수십 년간 임상을 해본 의자(醫者)라면 이명증과 견비통이 얼마나 투통거리인지를 인정하리라 본다. 이명증은 불치병은 아니지만 참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다. 정확히 변증하여 침구와 약물, 그리고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옛 고경(古經)을 보면 성인(聖人)이 제자와 함께 거리를 지나가다가 북을 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에 스승이 제자에게 “북소리가 어디에서 나는가” 물었다. 제자는 “북에서 소리가 났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스승이 다시 “북에서 소리가 났다면 누군가 북채로 북을 때리지 않아도 계속해서 소리가 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네 귀가 없다면 북소리를 어찌 듣겠는가” 물었다. 그러자 제자는 금방 말을 바꾸어 “북소리는 제 귀에서 났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스승은 껄껄 웃으며 “그 소리가 네 귀에서 났다면 북이 울리지 않더라도 네 귓속에서 계속 북소리가 나야 되지 않겠느냐” 반문하였다. 결국 제자는 말문이 막히고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이때의 가르침은 이러하다. 북소리가 울리려면 먼저 북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그 북을 때리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북이 울려서 퍼지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귀라는 감각기관이 있어야 하고, 그 감각기관을 깨어서 듣게 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 중에 한 가지라도 결여되면 북소리는 들리지도 들을 수도 없게 된다. 스승은 제자에게 이런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의 세계를 깨우쳐 주었다.

필자가 서두에 장황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양방에서 원인불명이라고 하는 이명증이라도 반드시 원인이 있음을 밝히고자 함이다. 또한 어떠한 유형의 이명증 환자라도 반드시 거기에는 스스로 몸 관리와 마음 관리를 잘못한 요인이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모든 인간만사와 고통스러운 병들 속에는 하나의 예외 없이 까닭과 연유가 있고, 이것이 인과(因果) 관계 속에서 진행됨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외부에서 들리는 온갖 소리나, 외부의 소리가 없음에도 귀에서 울리는 이명증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의식(意識)의 절대적인 지배 하에 있는 이식(耳識) 즉, 청각신경의 진동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외부의 자극이 없음에도 어떠한 이치에서 청각신경이 진동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내적으로 풍(風) ·담(痰)·화(火)·울(鬱)이 발생하여 청각신경을 끝없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즉 나뭇가지가 바람에 의해 떨리듯이 풍·담·화·울은 결국 내풍(內風)을 일으키고, 이 내풍이 청각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에 이명증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명증은 내풍을 잠재우는 것이 치료의 최대 관건임을 알아야 한다.

내풍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신정부족(腎精不足)이요, 둘째는 간담지화(肝膽之火)요, 셋째는 비주운화실상(脾主運化失傷)으로 인한 담탁형성(痰濁型成)이다. 필자는 편의상 신정부족(腎精不足)형, 간담지화(肝膽之火)형, 비실담탁(脾失痰濁)형으로 나눈다.

『황제내경』 <영추해론>편을 보면 “수해부족즉뇌전이명(髓海不足則腦轉耳鳴)”이라 하였다. 즉 신정(腎精)이 부족하면 이명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 신정의 부족으로 인한 이명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발생하여 끈질기게 오래간다. 그 소리는 은은하고, 피곤하면 더욱 심하고, 허리가 시큰거리는 게 특징이다.

간담지화(肝膽之火)형은 누구하고 싸움을 한 후라든지, 심한 정신적인 울화를 끓이고 난 뒤에 갑자기 발생하며, 소리가 참으로 요란한 게 특징이다. 허실(虛實)로 나누자면 실증(實證)에 속하는 유형이다. 발생된 지 수 일 또는 수개월 안에 제대로 침 치료를 받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장경악(張景岳) 선생은 “풍폭명이성대자다실 점명이성세자다허(風暴鳴而聲大者多實 漸鳴而聲細者多虛)”라 하여 실증은 대개 간담화(肝膽火)에서 발생하고, 허증은 대개 신정부족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비실담탁(脾失痰濁)형은 옛날 의통(醫通)이 이르기를 “비기허약즉청기불능승봉우이(脾氣虛弱則淸氣不能升奉于耳)”라 하여 비기가 허약하면 맑은 기운이 귀로 상승하여 받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달리 설명하면 일례로, 화학적으로 가공한 인스턴트식품 등을 섭취하면 비장에서 탁한 기운이 발생하게 되고, 이 탁한 기운이 청각신경을 통과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탁한 기운이 청각신경을 자극하여 이명증을 발생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이명증은 대개 비자연적인 음식의 섭취로 체질이 탁하고 뚱뚱한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소리가 탁하면서 변화무쌍하고, 날씨가 흐리면 몸이 무거우면서 심한 게 특징이다. 이명증은 때로는 간담화(肝膽火)와 비실담탁(脾失痰濁)이 겹쳐서 담화상공(痰火上攻)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간담화(肝膽火)와 신정부족(腎精不足)이 겹쳐서 나타날 수도 있으니 의자로서 세심한 변증이 필요하다.

후기

이명증은 밖으로 특별히 표시가 나는 병도 아니면서 참으로 끈질기게 환자를 괴롭히는 질환이다. 양의학 식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 무슨 정밀검사를 한다고 해서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는 서양의학보다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통찰하여 판단하는 동양의학의 변증 진단이야 말로 훨씬 차원 높은 의학이라 하겠다.

이름모를 풀 한 포기가 땅에 뿌리를 박고 소생하다가 사라짐이 결코 우연이 아니듯이 무심코 들려오는 북소리 또한 우연히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중중무진(重重無盡)한 묘연(妙緣)의 세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끝없이 안으로부터 괴롭히는 이명증 또한 거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연유(緣由)가 있다. 보이고 느끼는 현상에만 매달려 임기응변식의 치료를 하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그 연유를 밝혀 치료에 임하면 해결의 길이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 속담에 “개똥 위를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생명이 있고 삶이 있기에 고통도 느끼고, 잠도 안 오고, 이명증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고통이 있다고 조급해 하면서 반짝 효과의 의술을 쫓아다니기보다는 살아 있음을 감사히 여기고 조금이라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근본 해결의 길은 보이기 마련이다.

성인(聖人)이 이르길 “천지여아동근(天地如我同根)이요, 만물여아일장(萬物如我一場)라”했다. 천지만물의 ‘자연’이 나와 함께 있는데,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괴롭단 말인가.

민용기 | 龜潭醫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