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침술노인

서울을 약간 벗어난 경기도 퇴계원. 사암침술(舍岩鍼術)의 달인 이중구(李中求 취재 당시 73세) 옹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찾아오긴 했으나, 초행길의 막막한 심정은 어쩔 수 없다. 이 옹은 비록 의사 면허는 없지만, 스무 살 남짓에 터득한 독특한 침술로 서양의학이 쩔쩔매는 중풍 · 신경통 · 관절염 · 간질·정신병 등 난치성 질환을 귀신같이 고쳐 내는 침술 명의로, 또 병들어 찾아오는 가난한 이웃들을 무료로 돌보는 재야의 인술자로 소문이 나 있다.

대충 소문의 내용은 중풍 등으로 전신마비된 사람이 일어나고, 병원에서 불치병으로 선언받고 절망에 찬 인생을 보내는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돈이 없어 병원에조차 가지 못해 질병의 질곡에 빠진 사람을 일일이 고쳐 주고, 그리고 평생 사심(私心) 없이 쌓은 인술(仁術)이 너무 깊은 나머지 이 옹의 침을 맞고 기적적으로 일어난 환자와 주민들이 이 옹의 덕을 기리기 위해 공덕비를 세웠다는 것 등이다.

소문은 그렇다 치고 일단은 이 옹이 살고 있는 집을 찾는 게 급선무. 차들의 요란한 소음과 매연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마침 옆에 구멍가게가 있어 이 옹의 거처를 물어보았다.

“침 잘 놓는 이 씨 할아버지 말입니까. 소방서 옆길로 돌아 들어가 산길 끝나는 곳, 공동묘지 바로 밑에 살고 계십니다.”

마음씨 좋게 보이는 마흔 살쯤 된 주인은 침술 노인에 대해 묻자 반색을 하며 친절히 길을 일러 준다.

“소문에 침술이 용하다던데 어떻습니까.”

“이 동네 사람들은 병이 났다 하면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 할아버지한테 먼저 찾아가요. 병원에 가도 못 나을 병을 돈도 제대로 받지 않고 고쳐주니, 변변한 병원도 없고 돈도 없는 우리 같은 시골 사람들에게는 고맙기 그지없는 노인입니다. 요전에 저도 차에서 물건 내리다 발을 헛딛는 바람에 그대로 떨어져 다리와 허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한 사나흘 다니며 침을 맞고서 감쪽같이 나았어요. 중풍이다 신경통이다 해서 겨우 업혀 온 사람들이 멀쩡히 고쳐 나간 게 숱하게 많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침술을 터득했는지는 모르지만 용한 건 사실이에요.”

친절한 구멍가게 주인을 뒤로하고 일러 준 대로 걷다 보니 이내 산길이 나온다. 논과 밭 사이로 꼬불꼬불 난 길에는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걷는 사람들의 행렬이 있었다. 바로 침술노인에게 침 맞으러 가는 환자들이다.

인술이 꽃피는 신성한 공간

이 옹의 집은 구멍가게 주인의 말대로 산비탈이 끝나는 길에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집, 블록벽돌로 쌓아 올리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올린 누추한 집은 깨끗하게 단장한 병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허름한 집이지만 바로 이곳이 그 ‘깨끗한 병원’에서도 고쳐 내지 못하는 고질병을 고쳐내고, 인술이 꽃피는 신성한 공간임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가다듬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기다란 블록벽돌집 가운데로 난 입구에는 수십 개의 신발이 어지러이 널려져 있다. 그리고 네다섯 평쯤 되어 보이는 두 개의 방에는 삼사십 명의 환자로 가득하다. 이 옹은 그 속에서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열심히 침을 꽂고 있었다. 일단 이 옹의 침술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를 비집고 그 옆에 가 앉았다.

“어디가 아프오?”

“허리가 말도 못허게 빠져요. 숨도 차고 불면증도 있어요. 양방병원에 그렇게 다니고 약을 먹었어도 낫질 않아요.”

“양방병원에서 고칠 병이 따로 있지, 아주머니 병은 간장이 나빠서 온 병이오. 이런 병은 그 근본을 다스리기 전에는 고쳐지들 않는 법이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삶에 그을렸음이 분명한 쉰 살쯤 되어 보이는 아낙의 말을 유심히 듣고 진맥을 하던 이 옹은, 진단을 마친 듯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친절히 설명해 준 다음 혈 자리에 침을 꽂는다. 이렇게 환자들이 침을 맞고 꽂은 채로 있는 시간은 대개 이십 분가량.

허리 아파 기던 사람 그 자리서 일어나

오십대의 시골 아낙에게 침을 다 꽂은 이 옹은 이번에는 “아이구 아이구”하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겨우 부축받아 들어온 이성갑(취재 당시 67세 남자, 서울 면목동) 씨에게 다가가 아픈 사정을 들어준다.

“그렇게 허리가 아파요?”

“양방병원에 일 년 넘게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았어도 낫지 못했어요. 나이가 먹어서 나을 수 없다고 해요.”

“걱정허지 마요. 침 맞으면 나을 수 있을 게요.”

“제발 낫게만 해줘요. 집 한 채라도 드리리다.”

“그런 소리 말고 엎드려 봐요.”

이 씨는 몹시 상태가 나쁜 듯 혼자서는 엎드리지도 못하고, 남의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엎드린다.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소리를 질러댄다. 이런 이 씨에게 이 옹은 항문 부근의 장강(長强)이란 혈에 장침(長針)을 꽂고, 무릎 아래에 대여섯 개의 짧은 침을 꽂는다. 그리고 척추 부위의 툭 불거져 나온 허리뼈를 두 엄지손가락으로 힘껏 눌러댄다. 그럴 때마다 이 씨는 금방이라도 죽겠다는 듯이 비명을 질러댄다. 이 옹의 뛰어난 침술효과가 눈으로 확인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렇게 비명 지르지 마소. 죽을병은 아니니께. 이제 조금 있으면 좀 괜찮아질 게요.”

저렇게 아픈 사람이 조금 있으면 괜찮아진다니…. 척추 관절이 어긋나 경혈(經穴)에 피와 기(氣)가 뭉쳐 탈이 난 병인데, 어긋난 관절을 맞춰 주고 경혈을 풀어 주면 자연히 낫게 될 것이라는 게 이 옹의 설명이다.

조심혀서 일어나 앉아 봐요.”

어느 정도 치료를 마친 듯 이 옹은 침을 빼더니 이 씨를 일어나게 했다. 이 씨는 옆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조심 일어나 앉는다.

“살살 허리를 흔들어 봐요. 바늘구멍만치라도 괜찮으면 나을 조짐이오.”

“할아버지, 이것 괜찮은 것 같은데요. 아직 아프긴 해도 아까보단 허리가 시원해요.”

금방까지 비명을 지르던 이 씨는 이번에는 자신의 허리가 시원해지기 시작한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앉아서 허리를 이리저리 살살 흔들어댄다.

“시원하다면 나을 조짐이오. 이제 다음에 올 땐 집 반 채는 들고 와야 돼요.”

즉석에서 통증 없어지자 속임수로 오해하기도

이 옹은 제법 얼굴색이 돌아온 이 씨에게 농담을 하고는 다른 환자의 아픈 사정을 들어주기 위해 손을 옮긴다. 아무리 침술이 뛰어나다지만, 저렇게까지 즉효가 있을까. 쉽게 믿어지지 않아 이 씨에게 확인해보았다.

“진짜 아픈 통증이 덜합니까?”

“예,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참 신기하네요. 양방병원을 오랫동안 그렇게 다녔어도 나을 생각은 않고, 겨우 진통제로 버티다시피 한 병인데 말입니다. 지금까지 양방만 믿고 엉터리 치료를 해 온 것만 같습니다.”

눈으로 확인했으면서도, 또 귀로 들었으면서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올 때 다른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서너 번 기다시피 왔다는 이 씨가 갈 때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가는 건 분명했다. 동양의학과 침술에는 일반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저런 이치가 있는 것인가.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옆에 있던 이기수(취재 당시 45세 남자, 서울 청량리) 씨가 요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바람에 웃지 못할 일도 간혹 벌어진다고 목격담을 들려준다.

“지금처럼 며칠 전에도 허리를 못 쓰는 아줌마가 왔는데, 침을 놔서 낫으니께 처음엔 일어나서 막 성질을 내요. 침에 마취약을 묻혀 무슨 속임수를 썼지 않느냐고 막 화를 내는 거에요. 올 때는 통증이 심해 부축해서 겨우 왔는데, 단박에 낫으니 이상하다 그거지요. 나중에 여러 환자들이 이해시켜주니 수궁하고 연방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하고 가더라고요.”

머리가 묵직하던 환자 침 한 방에 나아

이런 이 옹의 침술효과는 잠깐 있으면서 몇 사람에게서 더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침술의 탁월함에 다시금 마음을 곧추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가 묵직하고 쑤신다는 마흔 살쯤 된 여인은 발바닥 중앙에 있는 용천혈(湧泉穴)에 침을 꽂으니, 이내 머리가 맑아 온다며 “이젠 눈 감고 잠 좀 잘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한다. 또 발가락이 말도 못하게 찌르고 아프다고 호소하던 환자는 발등의 임읍혈(臨泣穴)과 태충혈(太衝穴)에 침을 맞고는 시원해져 온다며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심한 타박상으로 팔이 퉁퉁 부어 팔을 전혀 들어 올리지도 못하던 환자는 어깨와 손등에 침을 맞고서 서투나마 ‘삐걱삐걱’ 팔을 들어 올리기도 한다.

중풍환자 20일간 침 맞고 걸어 다녀

즉효를 보는 병은 그렇다 치고, 중풍 등 고질병의 치료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그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치료받으러 온 사람들로부터 증언(?)을 듣기로 하였다. 먼저 서울 면목동에서 온 최승순(취재 당시 53세 여자)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습니까?”

“7개월 전에 중풍으로 쓰러졌어요.”

“침 맞고 효과가 있었습니까?”

“처음엔 한쪽을 못 쓰고, 말도 잘 안 되고, 인사불성으로 업혀 왔어요. 그런데 열흘간 침을 맞고 나니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고, 20일째부터는 남의 도움 없이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저에게 이곳을 소개해 준 이웃에 사는 남자도 중풍으로 쓰러졌다가 여기 와서 침 맞고 나았어요.”

심한 정신불안 침 두 번 맞고 나아

이번엔 서울 중곡동에서 온 조순자(취재 당시 58세 여자) 씨가 자신이 겪은 신비한 일도 빼 놓을 수 없다는 듯 자청해서 말을 걸어온다.

“제 남편이 올 4월에 머리가 아프고, 눈 부위 근육이 쑤셔 가까운 안과에 여러 날 다녔어요. 그런데 낫질 않고 일주일쯤 되니 눈꺼풀이 내려와 감기고, 머리 통증이 심하게 왔어요. 그래도 병명이나 원인을 몰랐어요. 그러다 지난 4월말 경에 이곳 할아버지에게 와 진찰하니, 지라(=비장)에서 병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3개월째 침을 맞았는데 신기하게 정상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아주머니는 어디가 아파서 왔습니까?”

“저는 신경통으로 이틀에 한 번씩 와서 침을 맞고 있어요. 한 달간 침을 맞았는데, 지금 벌써 좋아지고 있어요.”

“여긴 언제부터 다니기 시작했나요?”

“한 15년 전에 심한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있어요. 처음에 피곤하고 불면증으로 답답하고 불안한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괜히 울고 싶고 튀어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허리에 멍이 생기고, 피부가 아리고, 다리도 붓고, 발뒤꿈치도 시큰거리는 증상이 나타나더군요. 이곳 할아버지한테 와서 침을 딱 두 번 맞고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불안감과 답답한 마음이 없어지더니 나았어요. 그 후 침술이 용하다는 걸 알고 소화가 안 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조금만 병이 나면 쫓아와요.”

화학양약 중독 휴유증 5개월간 침 맞고 나아

이 밖에 서울에서 온 김 아무개(취재 당시 34세 여자) 씨는 4년 전에 자살하려고 신경안정제를 다량 복용하였다고 한다. 그 후 양방병원 중환자실에서 2년 넘게 입원하여 치료하였지만, 전혀 차도가 없이 약물 중독의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속이 좋지 않아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식사를 제대로 못하니 몰골은 뼈만 앙상하였다. 또 온몸이 말을 안 들어 오금조차 제대로 펴지 못했다. 5개월 전부터 이 옹에게 와서 침을 계속 맞고 있는데, 이제는 수족도 제대로 쓰고 밥도 먹을 정도로 상태가 크게 좋아졌다고 한다. 그는 이 옹이 참으로 용하고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또 인근 군부대에서 온 주명기 일병은 며칠 전 유격 훈련을 받다가 높은 데서 떨어져 발목을 다쳤다고 한다. 그 후 이 옹에게 와서 침을 맞았는데, 현재 거의 완치된 상태라고 한다. 그는 부대에서 훈련을 받다 보면 삐거나 타박상을 입거나 하는 등의 일이 많은데, 이 옹의 침술 효험이 커 그의 부대원치고 이 옹에게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서울 도봉구에서 온 김호건(취재 당시 68세 남자) 씨는 3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은 물론 말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또 정신도 맑지 못하여 예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물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간 여기저기 병원을 전전했으나 차도가 없이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러다 최근에 2개월째 이 옹에게 침을 맞고 있는데, 이제는 보행하는 데 큰 지장이 없고 정신도 온전해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옹은 김 씨의 경우 수(水)가 부족하여 화(火)로 온 중풍이라고 한다. 그런 경우의 사람은 대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겁고, 조그만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열 내고 혈압이 오르면 발발 떨리는 증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증상의 중풍은 화경(火經=心經)의 화혈(火穴)을 사(瀉)하고 수경(水經=腎經)의 수혈(水穴)을 보(補)하면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환자의 말을 들어보면 무릎 관절염에 걸린 중년 남자, 집에 강도가 들어 당한 충격으로 심장병에 걸린 여자, 심한 좌골신경통에 걸린 할아버지도 이 옹의 침을 맞고 비로소 몸이 나아지고 있다며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오행침법으로 각종 난치병 고쳐

그렇다면 양방병원에서 두 손 들어 버린 난치성 질병을 고쳐내는 이 옹의 침술 실체는 무엇인가. 궁금하여 잠시 물어보았다.

“침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디, 나는 주로 오행침법(五行鍼法)을 많이 써. 다른 침법을 써 보기도 혔으나, 그 중에서도 오행침이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제일이여. 오행침은 대개 팔꿈치와 무릎 아래쪽의 혈 자리에 침을 놓으니, 사고날 염려도 거의 없어.”

“오행침법이란 어떤 침술입니까?”

“자연은 금수목화토(金水木火土) 오행(五行)의 상생상극(相生相剋) 원리에 따라 생성되기도 하고, 사멸되기도 허는디 인체의 장부도 마찬가지여. 이 오행의 원리를 가지고 바람(風)으로 온 병, 차가워서(寒) 온 병, 화(火)로 온 병, 말라서(燥) 온 병, 습(濕)해서 온 병, 더워서(暑) 온 병 등을 다스리지.”

“침술 효과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통하던데, 침술의 병 치료 원리는 무엇입니까?”

“혈과 기가 맥히면 뚫어 주고, 차면 덥혀 주고, 더우면 식혀 주니 나을 수밖에 없지. 모든 건 자연의 원리여.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야 제대로 돌아가듯이, 인체도 조화를 찾아 주면 자연히 건강허게 되는 법이여.”

자연의 이치처럼 인체도 오행의 원리에 따라 순행

이 옹은 오행침법의 구체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 달라 하자,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예를 들어 위가 허해서 온 병은 위가 토장부(土臟腑)니께 화생토(火生土)의 원리에 따라 화경(火經=心經)의 화혈(火穴)을 보(補)해 주고, 토(土)는 목(木)에 의해 죽으니께(木剋土) 목경(木經=肝經)의 목혈(木穴)을 사(瀉)혀 주면 되지. 또 간이 허해서 온 병은 간이 목장부(木臟腑)니께 수생목(水生木)의 원리에 의해 수경(水經=腎經)의 수혈(水穴)을 보해 주고, 목(木)은 쇠(金)에 의해 죽으니께(金剋木) 금경(金經=肺經)의 금혈(金穴)을 사혀 주면 되지.

그렇다고 무조건 그렇게 되는 건 아녀. 인체의 조화란 우주의 변화마냥 무궁무진혀서 같은 병이래도 그때그때 다 다르니 치료허는 데 머리가 잘 돌아가야 혀. 지라(陰의 土臟腑)가 강허면 토극수(土剋水)에 따라 수장부인 콩팥을 괴롭혀서 나빠지게 혀. 그렇다고 지라를 사(瀉)혀 주는 게 아니고, 위(陽의 土臟腑)를 보혀 줘야 콩팥이 살아날 때도 있어. 이건 개가 닭을 물었을 때 그냥 닭을 뺏으려 허는 게 아니고 개에게 다른 살코기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여. 의술이란 그저 되는 게 아녀. 이거 오래 허다 보니 영(靈)이 통한 것 같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보여. 허지만 환자들은 장난처럼 그냥 꾹꾹 찔러 주어 나은 줄로만 알고 있지.”

가난한 병자 병 고쳐 주고 차비 주어 보내

이렇게 이 옹이 난치성 질환을 침술로 고쳐 주고 받는 대가는 환자들이 성의 표시로 담뱃값이나 하라고 놓고 가는 이삼천 원 정도. 이것도 주면 받고 안 주면 안 받는 형편이고, 노인이나 가난해 보이는 사람이 쌈짓돈을 내놓을라치면 “돈 벌 목적으로 이 짓 허고 있는 것 아니다”라며 극구 사양하는 게 예사였다.

돈 좀 많이 받지 그러느냐고 묻자, 이 옹은 의술하려면 돈과 욕심을 떠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의술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호한 태도부터 보인다.

“의술이 돈과 연관되면 환자를 속이게 돼. 가령 돈 많은 사람이 왔을 적에 이걸 어떻게 혀서 돈 좀 뜯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한 번에 고칠 병도 질질 끌고 안 먹을 약도 먹으라 허게 돼. 일단 의술을 허려면 통선도(通善道)허고 적음덕(積陰德)허야 혀. 의사는 침구사가 되었든, 한의사가 되었든, 양의사가 되었든, 머리부터가 원(原)의사가 돼야 혀.”

병자에게 헌신 봉사해 온 의술 인생

이런 의술 정신에 대해 옆에 있던 이 옹의 처 전기순 할머니는 이 옹이 이 세상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거든다.

“이 양반은 침값을 받기는 고사허고, 돈 없고 불쌍헌 사람이 오면 평생 숱허게 차비 주고, 약 지어 줘서 보내는 사람이오. 한번은 어린애를 하나는 업고, 둘은 걸려서 온 뚱뚱 부은 아지매 하나가 의자에 앉아서 우는 거여. 이 양반이 문을 열더니 저 아지매 왜 저렇게 우는지 한번 사연이나 물어보라고 그러는 거여. ‘아지매 왜 그러느냐’니께 말도 못허고 마냥 울어. 몰골을 보니 눈은 부어서 꼴도 아녀. 알고 보니 이 아지매가 어린애 낳고 먹을 게 없으니께 시래기를 주워다 죽을 끓여 먹은 거여. 그게 체혔다고 그러면서 침 잘 놓는다는 소문은 듣고 왔는디, 돈은 없고 혀서 서러워 운다는 거여. 신랑은 어디 있느냐니께 신랑은 마침 한 달간 예비군 훈련이 있어 집을 비웠는디, 간 지 삼 일 만에 애를 낳았다는 겨.

그 소리를 이 양반이 듣더니만 바로 들어오라고 그러대. 이 아지매가 침을 맞더니 이제 살 것 같다는 거여. 오목가슴에서 뭐가 툭 떨어지는 것 같고 시원하다는 거여. 그래 갈 때 같이 따라가서 사는 것 봐 주고 오라고 그러대. 택시를 태워 가지고 집에 갔더니 방이 손바닥만 헌디 개떡만 헌 이불 있고 아무것도 없어. 진짜 시래기죽 끓여 먹었다는 게 옳아. 그래 우리도 가난허지만 쌀 한 말 사고 연탄 열 장 사서 불 지펴 주고 간장 한 병과 미역 하나 사서 국을 끓여 줬어. 그러고 얼마나 흘렀을까 신랑허고 왔는디 다 살아 깨끗허게 와서 땅에 코 닿게 절을 하는 거여. 그걸 보니 사람으로서 당연히 혀야 헐 도리를 혔다고 생각허지만 마음이 흡족허드라고.”

상술의 의료인에게 경종 울리는 참된 의술인

이런 이 옹의 의술 행적은 심한 간질을 앓다, 이 옹의 침을 6개월간 맞고 결국은 나았다는 이상로(가명, 취재 당시 46세 남자) 씨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 씨는 전에 자신의 간질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니고, 약이란 약은 다 먹었다고 한다. 그래도 병이 낫지 않자 심지어 기도원에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그 사이 자동차도 팔고 집도 파는 등 전 재산을 다 날렸다고 한다. 그러다 이 옹을 만났는데 이 옹이 치료비를 받기는 고사하고 딱한 처지의 자신에게 밥도 주고, 갈 때엔 다음날 다시 오라고 차비도 주어 가면서 고쳐 주었다고 한다. 그는 이 옹이 돈 많은 사람이든 돈 없이 허름한 사람이든 차별 없이 대한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더 어렵고 정성껏 대해 준다고 한다.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압적으로 내려다 이 사회에 인술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옆에서 이 옹이 환자를 대하고 치료하는 걸 보니 이 옹에게 온 환자만큼은 돈이 없어 병을 못 고치고, 무식하다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가난하다고 설움을 받는 일만은 없을 듯하였다.

환자들이 인술 정신 높이 기려

한편 이 옹을 찾아온 환자들과 인근 주민들은 많은 난치병 환자를 구료하고 불쌍한 이웃을 돌보는 이 옹의 의술 인생과 인술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공덕비를 세우기도 했다. 이 점에 대해 이상로 씨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금년 정월에 할아버지한테 병을 고친 교수하고 목사 몇 분, 그리고 주민들이 앉아서 상의했어요. 이렇게 고맙게 공덕을 닦고 계신 분을 그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연령이 돼서 어느 때이고 가실 양반이니께 그러기 전에 공덕비라도 세우자고 추진했는데, 과거에 난치병으로 고생했던 사람들의 호응이 참 좋았어요. 할아버지는 ‘낯 내기 싫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고마움을 입은 사람에겐 진심의 표현일 뿐이에요.”

이 공덕비는 이 옹의 집 앞에 서 있는데, 비석의 앞면에는 ‘인술인 만죽 이중구 공덕비(仁術人 晩竹 李中求 功德碑)’라고 쓰여 있고, 옆면에는 공덕비를 세운 장승태(전 체신부 장관), 오승근(판사), 이태수(교수), 최정목(목사), 조운영(우남 스님) 등 오십 여 명의 설립자 이름과 설립일(1991년 辛未 4월), 그리고 뒷면에는 이 옹의 인술 역정이 새겨져 있다.

공덕비“……공은 오로지 간병과 구호에만 전심전력하였을 뿐, 전혀 이재(利財)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찾아오는 환자들 신분 귀천을 불문하고 지성으로 치료하고 빈한한 사람에게는 완치 시까지 무보수 가료와 차비를 제공했던 사례가 비일비재하였다. 요즘 일부 몰지각한 의료인들이 빈사(瀕死)의 응급 환자를 예사로 외면하는 세태에 공은 묵묵히 적선(積善)과 음덕(陰德)으로 일관하였으니 참으로 인술인의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서 공덕비 설립에 동참하였던 장승태 전 체신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장 전 장관은 재작년에 중풍으로 쓰러져 양방병원 치료를 받다 결국 낫지 못하고, 친구의 소개로 작년 겨울부터 금년 6월까지 이 옹에게 침술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이제는 걷게 되었다며 이 옹의 신통한 침술 능력과 인술 정신에 공감하는 바가 많아 공덕비를 세우는 데 힘을 합하였다고 답변해 주었다.

진단만 정확하면 어떤 병이든 나을 수 있어

이 옹의 진료 시간은 오전 다섯 시에서 오후 한 시까지. 그날 점심 후에 이 옹과 마주 앉아 이 옹이 걸어온 의술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오행침법을 주로 쓰신다고 했는데, 오행침법은 언제 개발되었습니까?

“임진왜란 당시 유명한 사명대사의 수제자 중에 사암(舍岩)이란 분이 계셨어. 석굴에서 득도혔다 혀서 사암 도인이라 혔는디, 이분이 개발하여 전래되어 내려오고 있어. 그래서 사암침법(舍岩鍼法)이라고도 혀.”

－ 오행침법은 어떻게 터득하셨습니까?

“나는 열세 살 적부터 의술 공부를 시작혀서 평생을 두고 공부허고 있어. 지금꺼지 본 책만도 1백 권이 넘지. 오래 책을 읽다 보니 영이 통헌 것마냥 병을 고치는 법이 훤히 보여. 허지만 오행침법은 간단혀. 오행의 원리만 알면 되지. 문제는 진찰여. 사람의 몸은 우주의 변화와 같이 조화가 무궁무진헌디, 같은 중풍이라도 이게 어느 장부에서 왔는지 다 틀려. 그걸 가려내야 허고, 또 그 장부가 뜨거워져서 그랬느냐, 차가워서 그랬느냐, 말라서 그랬느냐를 가려내야 혀. 그리고 차갑더래도 어떻게 혀서 차가워졌는지를 알아내야 혀. 그걸 오행의 원리에 따라 다스려 주기만 허면 돼. 그런디 진찰은 내가 평생을 두고 깨쳐도 다 못 깨닫겄어. 진단만 정확히 혀내면, 어떤 병이고 낫는 방법이 있어.

간병은 대장경에 나타나

－ 오랜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터득한 진찰 방법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진찰에는 전통적으로 사진법(四診法)이라 혀서 관형찰색(觀形察色=望診)이 있고, 묻고(=問診) 들어보는(=聞診) 진단법이 있고, 맥진(脈診=切診)이 있는디, 제일 정확한 건 문진(問診, 聞診)여. 이걸 종합혀서 판단 내리지. 얼굴색이 황색이 돋으면 지라가 나쁜 것이고, 청색이 돌면 간이 나쁜 것이고, 흑색이면 콩팥이 나쁜 게지. 그리고 허즉양마(虛卽痒痲) 실즉동통(實卽疼痛)이라고, 허하면 가렵고 실하면 통증이 오지. 또 차가우면 오그라들고, 뜨거우면 늘어져. 너무 뜨거우면 오그라드는 경우도 있지.

그리고 간병(肝病)은 대장경(大腸經)에 나타나니 대장을 소통시켜야 낫고, 대장병은 간경(肝經)에 나타나니 간을 고르게 혀야 허지. 콩팥병은 삼초경(三焦經)에 나타나니 삼초를 조화시켜 줘야 허고, 삼초병은 신장경(腎臟經)에 나타나니 콩팥을 보혀 줘야 허지. 또 지라병은 소장경(小臟經)에 나타나니 소장을 사해 줘야 허고, 소장병은 비경(脾經)에 나타나니 지라를 보혀 줘야 허지. 그리고 방광병(膀胱病)은 폐경에 나타나니 폐를 맑게 해 줘야 허고, 폐병은 방광경에 나타나니 방광을 맑게 해 줘야 허지. 이런 내용은 내가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으로 어느 의서에도 없지.”

무슨 병이든 침술로 다 고칠 수 있어

－ 침술로 병을 고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입니까?

“병은 무슨 병이든 침술로 다 고칠 수 있는 법이 있어. 발병한 지 얼마나 됐느냐에 따라 빨리 낫느냐 더디 낫느냐만 차이가 있지. 요는 진찰여. 진찰만 잘허면 고칠 수 있지.

한번은 해 돋을 때마다 오른쪽 눈자위를 중심으로 정신없이 아픈 할머니가 있었어. 아들이 고위 관직에 있어 좋다는 병원에 다 가 봤는디 그래도 낫질 않았어. 그러다 나헌티 왔는디 처음에 편두통인 줄 알았어. 세 차례 침을 놔도 안 들어. 그래서 발병헐 때 보자 허고 해 돋을 때쯤 돼서 보니, 눈은 충혈되고 머리는 아파 움켜쥐고 붙들어도 안 될 정도로 이 구성탱이(구석) 저 구성탱이 찧고 야단이여. 그렇게 한 삼십 분 허더니 그 후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말짱혀. 꼭 귀신들린 것처럼 그 시간만 되면 항상 그런다는 거여. 그래서 바로 생각해냈지. 시간을 찾는 병은 비장이 나빠졌을 때 잘 나타나거든. 그래서 비장은 토장부(土臟腑)니께 화생토(火生土)의 원리에 따라 화경(火經=心臟經)의 화혈(火穴)인 소부(小府)를 보(補)허고, 목극토(木剋土)니께 목경(木經=刊經)의 목혈(木穴)인 대돈(大敦)을 사(瀉)혀 주고, 또 비경(脾經)의 화혈(火穴)인 대도(大都)을 보(補)시켜 주고, 비경의 목혈인 은백(隱白)을 사(瀉)혀 주었더니 단박에 말짱허게 낫는 거여.

또 한번은 서울서 한의원에 있을 때 어떤 걸인이 왔는디, 썩은 냄새가 난다고 못 들어오게 혀. 그래 사람이 사람을 못 들어오게 허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들어오라 혀서 보니 헝겊으로 싸맸는디 다리가 퉁퉁 붓고 썩어 들어가. 이건 습(濕)이 많아 온 병이거든. 습을 끌고 다니는 장부는 비장이여. 그래서 대돈·은백·경거·상구에 침을 하여 비장을 사혀 주었더니 두 번 만에 깨끗이 났더라고. 그러니 진찰을 잘허고 원인을 밝혀 내는 게 문제여.

그리고 왼쪽 손부터 흔들리며 시작하는 간질은 간이 실(實)해서 오는 것이니 경거·중봉·소부·행간에 침을 하여 간을 사혀 주면 낫어.”

요즘 병은 불을 다스려 줘야 나아

－ 요새 중풍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중풍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중풍은 말 그대로 바람이 차 올라와 생기는 병이지. 그러니 바람만 빼 주면 자연 낫게 돼. 방광이나 쓸개가 강해서 바람이 생기기도 허지만, 요즘은 대개 심장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심장은 화장부인디 요새 사람은 돈이나 모든 욕심이 지나쳐. 그러니 심장에서 불이 일어나 인체가 조여 타고, 자연히 바람(가스)이 생기지. 그래서 요새 병은 심장을 잘 다스려야만 쉽게 나아. 그러고 젊어서 계집질 많이 헌 사람도 물이 말라붙어 화가 승(勝)허니 자연 바람이 많이 생겨 쓰러지지.”

－ 정신병을 침으로 고쳤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고치십니까?

“한번은 짝사랑허다 실연당해 미친 처녀가 왔어. 오줌똥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 데나 보고 완전히 넋이 나갔어. 항문 부근의 장강혈(長强穴)에서 피를 소주잔으로 한 잔 뽑아 주니 나았어. 독맥(督脈)이 지나치게 강해진 것이니 이것을 사혀 준 거지. 육체의 병이나 정신의 병이나 결국은 부조화이지. 조화를 찾아 주면 자연히 낫게 돼.”

－ 의술을 배우게 된 동기가 있었을 텐데요.

“우리 집안은 충남 한산에서 논 백팔십 마지기 짓던 양반 집이었어. 그 당시 양반 집에선 대개 문중 의사를 맨들었는디, 부친이 나를 의술 공부시켰어.”

－ 문중 의사는 왜 만들었습니까?

“옛날에 의술은 천대받던 술수였는디, 상놈이 양반과 교제헐려고 배우거든. 가령 양반 집 며느리나 딸이 아프면 상놈에게 부탁혀야 혀고, 또 상놈이 양반 집 딸이나 며느리를 주물럭주물럭 허는 꼴도 쑥스럽고 혀서 문중에서 한 명을 내세워 가르치는 거여.”

의서 수백 독하여 의술 깨우쳐

－ 의술을 깨우쳐 준 스승이나 집안에 의술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지요?

“없었어. 주로 의서를 보고 스스로 깨우쳤어. 뛰어난 침술인이 있다고 소문을 들으면 부여고 영월이고 쫓아가 무슨 법으로 허고,어떻게 고쳐 내나 보기도 혔어. 허지만 별것 없더라고.”

－ 의술을 깨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점이었습니까?

“의서를 한창 읽을 적엔 하도 앉아 있어 궁둥이뼈가 걸려 못 앉을 정도였어. 그래도 많은 의서를 읽을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지. 읽고 또 읽고 통헐 때까지 읽었어. 그리고 지금은 척 보면 알 수 있지만 혈 구멍 찾아내는 데도 고통이 오래 따랐지.”

－ 의술을 터득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 책은 어떤 것입니까?

“<의학입문>이 기초가 되었고, <황제내경>과 <의부전서>가 큰 도움을 주었지. 거기엔 자연의 이치, 사람의 이치 모든 게 다 쓰여 있어. 침술을 깨치는 데는 <침구대성>이 큰 도움을 주었고.”

－ 어느 정도 되니 의술에 자신이 생기던가요?

“한 스무 살 되니 의술에 자신이 생기기 시작혔어. 당시엔 지금처럼 어려운 병 없었어. 체허고 설사허는 것 등이 고작이었어. 농사지으며 찾아오는 사람 있으면 치료혀 주고 살았지.”

명침 실력 보고 한의원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야단

－ 의술에만 전념한 때는 언제입니까?

“사이비 종교에 미쳐 정신병자가 된 서울 살던 큰 누님 병을 침으로 완전 고쳐 주고, 또 이웃집 안동 김 씨라는 양반 정신병도 고쳐 주니 소문을 듣고 제기동에 있는 한의사 넷이서 또 다른 정신병 환자를 데리고 왔어. 그래서 그 환자도 다 치료혀 주고 나니 서로 데려가려고 그래. 그래서 제기동에 있는 제성국한의원에서 한 2년간 일허고, 그 다음엔 망우리에 있는 절로 올라가 버렸지.”

－ 망우리 절엔 왜 올라간 건가요?

“한 2년 제성국한의원에 있었을 무렵, 하루는 견비통 환자가 왔는디 사흘을 침을 해도 낫질 않는 거여. 그래서 바로 책을 싸 들고 의술 공부 더 혀야겄다고 망우리에 있는 절에 들어가 한 2년 있었지. 그러다 내려와 이문동에 방 한 칸 얻어 놓고 있는디 한의사들이 데려가려고 노상 집에 와서 살어. 그래서 제기동에 있는 동남한의원에 가서 환갑 되던 해까지 한 15년 있었지.”

－ 한의원에 있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이 있었을 텐데요.

“나헌티 침 맞은 환자들이 낫으니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정신없이 찾아들더라고. 그러니 다른 한의원에서 난리 났어. 자기들은 파리 날리니께, 무면허 한의사가 침을 놓는다고 하루가 멀다 허고 뭐라 허고 난리여.”

－ 그 한의원은 언제 그만두었는가요?

“면허 없고 허니 주위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도저히 못허겄어. 환갑 때까지만 허고 퇴계원 이 골짜기로 들어와 숨었지.”

－ 그래도 요즘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는데….

“여기서 한 석 달 있으니 제기동 한의원에서 침 맞았던 환자들이나, 침 맞고 나았던 사람들에게 소문 들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밀려들어. 환자들이야 병 고치고 싶은 생각뿐이지.”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 의료제도 개선해야

－ 면허가 없다고 어려운 점도 많이 겪었을 텐데요.

“제기동 한의원에 있을 때부터 어려움 많이 당했지. 나야 불쌍한 사람들 고쳐 줄 목적이었지만 세상이 어디 그려. 의술은 있어도 면허 없다는 것 때문에 속상허고, 하도 서러워 모든 것 때려 치고 숨어 살겄다고 몇 번이고 맘먹었어. 그 사연을 어떻게 일일이 말헐 수 있겄어. 그냥 가슴에 묻어 두고 살아가는 게 낫지.”

그게 무슨 사연인지 이 옹은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는다.

－ 면허 없더라도 의술이 뛰어난 사람을 보호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장 장관이라고 전에 체신부 장관허던 분이 보사부 장관 찾아가 내 얘기 죽 허고 어떻게 면허 낼 수 없느냐니께, 침구사법만 있으면 당장 보호혀 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허겄는디 법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허더래. 그런디 여기 와서 봐서 알겄지만 침술의 효과란 참으로 뛰어나. 모두 침 맞고 낫는다고 봐야지. 침의 효과를 아무리 작게 잡아도 30퍼센트의 환자는 구헐 수 있어. 그걸 활용헌다면 비싼 약값이나 국민 의료비를 절감헐 수 있어 국가적으로 수천 억 이익이여. 정부는 빨리 이런 점을 인정허고 침술을 국민들에게 보급혀서 침을 가정에 상비혀 두었다가 간단한 병은 스스로 고치도록 허는 게 필요혀. 그리고 뛰어난 침술인은 보호허고, 그 맥이 끊기지 않도록 혀야지. 나야 다 살았지만 앞으로 원허는 건 그것 뿐여. 그리고 병원은 세금을 받아서 정부가 운영허야 돼. 의사는 월급제로 허고. 그려야 의술이 깨끗해져.”

먼 사람도 형제처럼 생각하는 게 생활 신조

－ 선생님 의술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있습니까“

“한의과대학 졸업한 의사들이 여럿 다녀갔어. 그러나 ‘나는 한의과대학 나왔노라’ 허고 자존심이 있어서 어쩌다 묻고, 이것저것 보고만 가지 배우려고는 안 혀. 옛날에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손자헌티도 배웠는디, 지금은 그게 아녀. 강남에 있는 한의사 하나는 자기 신경통 환자 데리고 와서 침도 맞히고 유심히 보고 몇 달 댕겼어. 그리고 가선 신경통 환자가 오면 그대로 혔는가 봐. 한번은 와서 ‘선생님 허는 대로 혀보니 잘 나아요’ 그러대.”

－ 평소 생활 신조는 무엇입니까?

“내 신조는 선조인 목은(木隱) 할아버지가 말씀허신 대로 아지자손백대지친(我之子孫百代至親)이지. 아무리 먼 사람도 내 형제처럼 생각허란 말인디, 이것을 명심허면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모든 건 낯 낼 필요가 없어. 내가 가진 의술로 음덕을 쌓고 병든 사람을 사랑헐 뿐여.”

이중구 옹의 집이 옹의 의술 인생을 듣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었다. 이로움을 보면 의(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자신의 몸을 던졌던 우리 선조들. 의인(義人)과 인인(仁人)이 점점 사라져 가는 이 사회에서 인술(仁術)과 의술(義術)은 어디에서 찾아야만 하는가. 의서에서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면허에서 찾아야 하는가. 의술(醫術)은 면허로 내줄 수 있지만, 면허로도 내줄 수 없는 게 인술(仁術)이요, 의술(義術)이리라. 병자 하나하나의 생명을 위해 사사로움을 물리치고 일생을 던진 이중구 옹. 그는 비록 면허가 없어 ‘돌팔이’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이 시대의 참된 의술인이 아닐까. 밤늦도록 이 옹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서서 나오는 어두운 산길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비춰 주고 있다.

취재 그후.

필자가 이중구 옹을 수소문하여 발굴 취재한 때가 1991년 9월입니다. 그리고 월간 <시사춘추> 1991년 10월 호에 ‘향토명의열전’이란 제목의 기획 연재기사 중 4번째로 발굴한 명의로 글을 실었습니다.

기사가 나가자 전국 각지의 많은 환자들이 이중구 옹에게 찾아가서 병고를 벗었습니다. 또한 전국의 많은 한의대생들이 그룹을 지어 여러 달 동안 이중구 옹의 집에 머물면서 이중구 옹의 사암침술 경험방을 배워 가기도 했습니다.

조금이나마 난치병 환자들에게 재생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는 점에서 향토명의를 발굴 취재하고 있는 필자로선 자부심을 느낍니다. 또 나라의 침술 발전과 연구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보람을 느낍니다.

이중구 옹은 2002년 84세의 일기로 작고하였습니다.

김석봉 | 동양자연의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