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염으로 위독했던 생명 약 붙이고 말끔히 나아

최행규(崔幸圭 1985년 88세 일기로 작고) 옹은 '종기의원'이다. 그는 가전 비방약을 이용하여 종기·나력·연주창·단독 등의 근종을 몽땅 뽑아내 위급한 처지의 환자를 귀신같이 구해내는 의원으로 소문이 나있다. 그의 신통력에 주위 사람들은 아예 그를 '종기 의원'이라 부르고 있다.

필자가 최 옹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 향토명의가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여동생이 30여 년 전에 유방염이 심해져 생명이 위독했다고 한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으나 낫지 않아 절망에 차 있었는데, 우연히 최 옹의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고나더니 환부에 팥알만한 약을 3개 붙였는데, 이내 고름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말끔하게 나아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그때 최 옹을 알지 못했더라면 큰일을 치를 뻔했다며, 그런 신통한 약은 난생 처음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오지 마을인 최 옹의 집에는 종기·나력·연주창·단독 등 고름이 줄줄 흐르는 환자와, 농구기에 다쳐 덧나고 화농이 된 사람이 연이어 찾아왔다고 한다. 이런 환자를 최 옹은 약을 한 번 써서 백발백중으로 신통하게 고쳐 줘 인근에 '종기 의원'이란 별칭으로 널리 이름이 나 있었다고 한다.

몰약 · 유향 등 25가지 약재로 약 만들어

이 이야기를 듣고 최 옹을 찾았으나 이미 최 옹은 작고한 처지였다. 대신 그의 손자인 최종도(崔宗道 취재 당시 55세) 씨가 집안의 전통의술을 계승하고 있어 어렵게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최종도 씨는 그의 조부가 종기나 유방염 등의 치료에 능했다는 건 아나, 어렸을 적부터 조부와 떨어져 서울에서 생활하는 바람에 자세한 구료일화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한다. 그의 부친도 조부의 의술을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객지에서 생활하다가 조부와 부친이 작고한 후 조부가 거처하던 고향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약은 고향집에 와서 보니 조부가 써놓은 <가전비방서>가 있어 익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비방서는 그의 숙부가 오래 전에 가져간 후 소실되었다고 한다.

가치있는 전통 의술과 의약이 기록된 <가전비방서>가 소실되었다니, 그 이야기를 듣고 아쉬움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쉬움에 차 있는데 최종도 씨는 <가전비방서>는 소실되었지만, 비방서에 기록된 종기약 처방과 만드는 법에 대해선 자신이 별도의 기록을 해놓았다며 보여 준다.

기록을 보니 처방은 월석·석웅황·몰약·유향·홍영사·백영사·신석 등 25가지 약재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봉승록(奉乘錄)·금정석(金精石) 등 일부 약재는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약은 이들 약재를 분말한 다음 같은 분량으로 넣고 반죽하여 팥알 크기의 환으로 만든다. 약은 외치용으로 환부에 붙일 뿐 복용해서는 안 된다. 약을 붙이고 나면 이내 환부에서 고름이 나오고 근이 녹아 나온다. 대개 5일 정도 있으면 모두 삭아져 나온다. 그 뒤에는 살이 빨리 차오르라고 가루약을 뿌려 준다. 그 가루약은 한 가지 약초로 만들어지는데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약을 붙인 후 어지간한 종기나 염증은 10일 이내에 완치된다. 완치 후 흉터가 남는 일은 일체 없다. 치료 과정에서 육류음식·술·담배는 주의해야 한다.

피부병과 신경통 치료에도 능해

한편 최종도 씨는 그의 조부가 종기 치료뿐만 아니라 피부병과 신경통 치료에도 능했다고 한다. 피부병 약은 구전단이란 처방인데, 20가지 정도의 약재로 만들어진다. 만드는 법은 각 약재를 같은 양으로 넣고 분말한 다음 팥알 크기로 환을 짓는다. 이것을 하루 한 차례씩 3알을 복용한다. 알레르기 피부병과 버짐 등 어지간한 피부병은 1달 이내에 낫는다고 한다. 신경통 약은 15가지 정도의 약재로 만들어지는데, 처방대로 달여서 하루 두 차례씩 복용하면 몇 첩에 통증이 사라지는 등 효과가 아주 크다고 한다.

최종도 씨는 자신은 조부가 하던 대로 약을 만들 수는 있지만, 이제는 환자가 찾아오지 않아 활용할 기회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확인해본 바 마을 이장에 의하면 아직도 가끔 관절염이나 신경통 환자가 찾아와 치료받고 나아서 간다고 한다. 따라서 약의 효능이나 명성은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종도 씨가 찾아오는 환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면허가 없는 관계로 괜한 트집이 될까 경계하는 마음인 듯하였다.

아무튼 취재 당시에 약의 모습이나 치료하는 광경을 볼 수 없는 것과, 환자들로부터 생생한 구료담을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만 종기약의 재료에 대한 약성을 문헌을 통해 검토한 바, 명성 그대로 효과를 낼 충분한 근거가 있어 위안이 되었다.

종창과독을 풀고 살을 생신시키는 약재로 처방 구성돼 있어

▶월석은 광물질인 붕사를 정제한 것이다. 성질은 차고 독이 없으며 맛은 쓰고 맵다. 폐경과 위경에 작용한다. 효능은 열을 내리고 담을 삭이며 독을 푼다. 소염작용·억균작용·방부작용을 나타낸다. 인후두의 염증·입안이 헌 데·치주염·궤양·악창(惡瘡) 등에 치료효과가 있다.

▶석웅황은 유화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광물질이다. 성질은 따뜻하고 독이 있으며 맛은 맵다. 간경과 대장경에 작용한다. 담을 삭이고 습을 없애며 벌레를 죽이고 독을 푼다. 해독작용과 살균작용이 비교적 강하여 악창·종독·습진·옴·파상독·부스럼·독사 물린 데·독충 물린 데·연주창·치질 등 외과질환 치료의 요약(要藥)이다.

▶몰약은 몰약나무의 진을 말린 것이다. 성질은 평하고 독이 없으며 맛은 쓰다. 간경과 비경에 작용한다. 혈을 잘 돌게 하고 어혈을 없애며, 부기를 내리고, 통증을 멈추게 하며, 새살이 잘 돋아나게 한다. 어혈로 인한 복통·월경통·타박상·악창·치루·부스럼에 치료효과를 나타낸다. 유향과 함께 쓰면 활혈지통작용(活血止痛作用)과 소종생기(消腫生肌) 효능이 더욱 강화되어 외상 치료에 요약으로 쓰인다.

▶유향은 유향나무의 진을 말린 것이다. 성질은 따뜻하고 독이 없으며 맛은 맵고 쓰다. 심경과 비경과 간경에 작용한다. 기혈을 잘 돌게 하고, 통증을 멈추게 하며, 경련을 풀고, 부은 것을 내리게 하며, 새살이 잘 돋아나게 한다. 종양·부스럼·타박상·복통·월경통·산후 복통·폐경에 치료효과가 있다. 어혈을 삭히고 피를 잘 통하게 하며, 막힌 경락을 소통시키는 효능이 있어 진통시키는 힘이 강하므로 예전부터외상 치료에 요약으로 써 왔다.

▶홍영사와 백영사는 수은과 유황을 3:1의 비율로 섞어 열을 가해 만든 것이다. 성질은 따뜻하고 독이 있으며 맛은 달다. 심경과 신경에 작용한다. 정신을 안정시키고, 혈을 잘 돌게 하며, 담을 삭인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데·가슴이 답답한 데·정신이 산란한 데·잠을 이루지 못하는 데·배가 아프고 찬 데에 치료효능이 있다.

▶신석은 산화비소를 주성분으로 한 광물질이다. 성질은 뜨겁고 독이 있으며 맛은 맵고 시다. 폐경과 대장경과 비경과 위경에 작용한다. 담을 삭이고 학질을 낫게 하며 벌레를 죽이고 굳은살을 없애 준다. 대열대독(大熱大毒)한 약재로서 독이 독을 다스리는 효능이 있어 외용약으로 쓰면 치질·연주창·나력·주마담·궤양 등에 치료효과를 발휘한다.

화학약의 부작용과 피해 없는 자연 소염약

종기·나력·연주창·단독 등은 오늘날엔 흔하지 않게 된 병이다. 설령 오늘날 이들 병이 생긴다 해도 화학소염제나 화학 항생제에 의존하여 치료하는 터라 최행규 옹이 예전에 활발히 사용했던 것과 같은 전통 약은 상당히 그 활용 범위가 축소된 형편이다. 하지만 예전엔 많은 사람에게 이들 병이 발병되기도 하고 잘 치료되지도 않아 골칫거리였다.

종기는 살갗의 한 부분이 곪아 고름이 잡히는 병이다. 심해지면 중심에 근종이 단단히 뭉치면서 점차 살이 썩어들어가게 된다. 나력은 목·귀밑·겨드랑이 등 임파절에 딴딴한 멍울이 생겨서 쉽게 삭지 않는 병증이다. 심해지면 곪아 터져 멀건 고름이 나오고 속에서 비지 같은 것이 섞여 나오는 등 염증성 화농 종창으로 발전한다. 연주창은 나력이 여러 개 잇달아 생긴 것이 곪아 터진 것을 말한다. 나력이 여러 개 잇달아 생겨서 마치 구슬을 꿰어 놓은 것처럼 된 것을 연주나력이라 하고, 연밥송이처럼 생긴 것을 연자력이라고 한다. 한번 고름이 터져 나오면 오랫동안 아물지 않고 누공(漏孔)이 생긴다. 단독(丹毒)은 다친 상처나 긁어서 난 상처에 연쇄상구균이 침입하여 염증이 생기는 급성 전염병이다. 오한 고열과 함께 피부가 붉게 붓고 몸이 쑤시고 머리가 아픈 증상을 수반한다. 때로 물집이 생기고 터지면 누런 물이나 고름이 나오기도 한다. 주로 아랫다리와 얼굴에 생기는데, 주위로 급속히 퍼져 나가며 가까운 임파절이 붓는다.

종기 대신 화학독성물질에의한 암·종양 창궐

이들 병이 예전에 많았던 것은 1960년대까지만해도 '보릿고개'와 '춘궁기'란말이 있었듯이 예전에 영양실조가 심했기 때문이다. 즉 영양 섭취가 부실해지자 피부 등 말초기관부터 저항력이 떨어져 외부의 세균에 쉽게 감염되거나, 상처나 부스럼이 생기면 세균의 침투를 막아 내지 못해 종기·나력·연주창·단독 등 병증이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엔 영양실조이 해결되면서 세균에 의한 외부적 감염 질환이 사라지게 되었고, 더불어 최행규 옹의 비방과 같이 이들 질환에 대한 치료약의 활용가치가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을 돌고 돈다고 했던가? 오늘날의 실정을 보면 물질이 풍요해짐으로써 영양실조로 인한 외부의 세균에의한 감염질환이 사라졌다. 하지만 대신 화학물질과 화학약의 남용으로 인해 체내에 화학 독성물질이 축적됨으로써 내부로부터 악성 질환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예전에 세균의 감염에 의해종기 등 외부적 질환이 나타났다면, 오늘날엔 화학물질과 화학약의 섭생으로 인해 화학독성물질이 체내에 축적되어 오장육부와 세포조직이 썩어 문드러지는 종양과 암 등 내부적 질환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또 같은 맥락으로 예전에 외부적 감염으로 인해 임파절 질환인 나력이 빈번했다면, 오늘날엔 내부에 화학 독성물질이 축적되어 임파절이 파괴됨으로써 임파종양과 갑상선염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예전에 외부의 세균에 의해 피부 조직이 썩는 연주창이 나타났다면 오늘날엔 대신 화학독소에 의해 피부 조직이 썩는 피부암과 유방암 등의 질환이 나타나고 있는실정이며, 예전의 단독 대신 오늘날엔 뼈와 관절이 화학독소에 의해 붓고 파괴되는 관절염·골수염·버거씨병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암 · 종양 · 관절염 · 버거씨병 등에 치료 가능성 제공

따라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 그대로 최행규 옹의 비방약이 오늘날이라고 그 가치를 상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활용하고 발전시키기 나름으로 예전의 종기·나력·연주창·단독 대신 동일 맥락으로 오늘날에 나타나고 있는 암·종양·갑상선염·피부암·유방암·관절염·골수염·버거씨병 등의 질환을 치유, 또는 해결의 단초를 제공해줄 의학적 소지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필자는 전에 향토명의로서 김연창 옹을 취재하면서 김 옹이 최행규 옹과 비슷한 재료로 만든 약을 이용하여 골수암·유방암·갑상선염·관절염·골수염 환자를 말끔히 고친 일을 확인한 적이 있다. 따라서 비록 최 옹의 전통약이 세균의 감염에 의해나타나는 종기 등을 치료하는 약이라 할지라도 온고지신의 지혜를 발휘한다면 오늘날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암·종양·갑상선염·피부암·유방암·관절염·골수염·버거씨병 등에 치료의 실마리을 제공해 줄 소지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더구나 세계보건기구가 이 지구상에 있는 3만여 종의 물질을 분석해본 결과 암세포를 삭힐 수 있는 것으로 비상과 소금 간수 등을 꼽고 있음을 비추어 볼 때 독을 풀기 위해 비상 성분을 지닌 석웅황과 신석 등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최 옹의 비방약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연구해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취재 그후.

최행규 옹을 49번째 향토명의로 발굴 취재하여 글을 쓴 때가 2003년 7월 4일부터 7월 10일입니다.

뒤늦게나마 최행규 옹의 의술을 발굴하여 기록하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최행규 옹의 비방약은 몇 가지 불분명한 약재명이 있어 연구한 다음 민속의약비방에 자세히 공개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김석봉 | 동양자연의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