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내려오는 비방약으로 와사증 치료

경상북도 청도(淸道)는 지명 그대로 물 맑고 산이 푸른 고장이다. 인근에 운문산·비슬산·선의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동창천·남산계곡·학소대계곡·삼계계곡 등의 맑은 물이 그 사이로 흐르며 절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여승) 사찰인 인근의 운문사와, 그곳의 수령 5백 년 된 앉은 소나무는 고장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이 밖에 청도 소싸움놀이로 유명한 민속놀이와, 씨 없는 청도 감과, 향이 좋은 복숭아는 맑고 유서 깊은 고장의 풍미를 더해준다.

이 청도군의 한 마을에 사는 김호임(취재 당시 69세) 할머니는 구안와사증 치료 전문가로 소문이 나있다. 그는 집안에서 내려오는 전통 비방약을 이용하여 구안와사증을 백발백중 치료해주기로 유명하다.

필자가 김호임 할머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청도가 고향인 사람의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인 20년 전에 구안와사증이 생겨 인근에 있는 한 마을의 구안와사증 치료로 유명한 할머니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얼굴에 약을 붙인 후 감쪽같이 구안와사증이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은 워낙 오랜 세월이 흘러 그 할머니가 생존해 있는지는 모르지만, 구안와사증 치료에 뛰어났다고 한다. 당시에 구안와사증 전문하면 인근에서 그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환자도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와사증 치료 전통의술 명맥 이어지는 마을

그 소식을 듣고 막연히 마을을 수소문하여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를 찾았다. 그 결과 마을 이장이 전하는 바는 예전의 할머니는 벌써 별세하였고, 명성을 떨치던 의술은 마을의 서너 집에 전수되어 구안와사증 치료 마을로서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인근의 사람이나 타지의 사람이 구안와사증이 발병하면 여전히 마을을 찾아와 예외 없이 구안와사증을 나아 간다고 한다.

마을 이장의 말을 듣고 구안와사증 치료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안도하며 마을의 전통 의술 계승자 중 원조 격인 김호임 할머니를 만났다. 김 할머니를 만난 첫인상은 자그마한 체구에 온화한 우리네 여성의 풍모였다. 마을은 앞으로 흐르는 맑은 물과 뒤로 버티고 있는 푸른 산에 안긴 채 고장의 명물인 감나무와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로 덮여 있었다.

자래초등 14가지 약재 찧어 약 만들어

김호임 할머니의말에 따르면 구안와사증 치료법은 그의 집안에서 전수된 의술로서, 그의 시아버지(박덕기 1980년 타계)와 시어머니(예이분 1985년 타계)가 생전에 많은 환자를 보았다고 한다. 그는 18살에 인근의 사동마을(마을에선 그를 사동댁이라 부른다)에서 시집와 시부모가 이르는 대로 약을 만들면서 치료법을 배웠다고 한다.

약은 14가지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7가지는 약초이고 7가지는 식물 열매라고 한다. 7가지 약초는 산미나리와 자래초 등이고, 7가지 열매는 아주까리열매 등이라고 한다. 약초 7가지 중 4가지는 말린 걸 써도 되나, 3가지는 겨울에도 반드시 생것을 즉시 채취하여 써야 한다고 한다. 또 일부는 자연 그대로 쓰지 않고 집에서 약간의 가공을 하여 쓴다고 한다. 그리고 일부 약초는 주변에 흔하지 않아 필요에 따라 쓰기 위해 산에 재배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한다. 약재 중 한 가지라도 빠뜨리면 제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시부모가 일러준 대로만 할 따름이라 약초를 직접 보면 알아도 약 재료 하나하나의 이름은 모른다고 한다. 약이 궁금하여 가지고있는 약재를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아직은 약의 재료나 만드는 법에 대해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단지 모든 약재를 한데 넣고 사용할 때마다 찧어서 만든다고만 일러준다. 그때그때 만드는 것은 약이 찧어 놓은 지 하루만 지나도 약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지섣달에도 환자가 찾아오면 앉혀 놓고 산과 들로 나가 약초를 뜯어와 그 자리에서 약을 만든다고 한다.

약 붙인 곳에서 진물 흘러나오며 1달 만에 입 돌아와

구안와사증 환자에게 약을 붙이는 곳은 안면이 마비된 쪽의 광대뼈 정가운데 밑(대략 거요 혈에 해당)이다. 붙이는 방법은 약을 가로 세로 3센티미터 정도 크기로 만들어 안면에 붙인 후, 그 위에 비닐은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거즈를 대고 반창고로 붙여 둔다. 붙이는 시간은 24시간이다. 약을 붙이는 횟수는 한 번이고, 간혹 두 번 붙이는 경우도 있다.

약을 붙이고 24시간이 지나 떼어보면 약을 붙인 자리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물집이 잡혀 있다. 물집을 이쑤시개 등으로 따 놓으면 진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진물이 다 흘러나오면 처음엔살갗이 불긋불긋하다가 나중엔 푸르스름하게 변하면서 딱지가 앉는다. 딱지는 앉은 지 5일쯤 있으면 떨어지는데, 얼굴에 흉터가 남는 일은 일체 없다.

틀어진 입과 안면은 진물이 흘러나오고, 딱지가 앉고, 딱지가 떨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바르게 된다. 안면이 바르게 될 때까지 걸리는 기일은 15세 미만의 어린이의 경우 구안와사증이 발병하여 바로 오면 15일 정도이고, 어른은 20~25일 정도이다. 물집이 크게 잡혀 진물이 많이 나오는 사람이 빨리 치유되고, 발병한 지 여러 달 된 사람이나 침 맞고 오는 사람은 치유되기까지 1~2달 걸린다.

치료 가능한 시한 내에 오면 낫지 않는 예가 없어

치료 가능 시한은 구안와사증이 발병한 지 1년으로, 1년 내에 오면 약을 붙여 입이 바르게 돌아오지 않는 예가 거의 없다. 치료 시한인 1년이 넘긴 경우에는 잘 낫지 않고, 낫더라도 오랜 시일이 걸린다. 또한 볼에 뜸을 뜬 사람이나 침을 많이 맞아 볼이 늘어진 사람은 약을 붙여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 그는 환자를 보아 약을 붙여도 치료되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약을 붙여 주지 않고 돌려보낸다고 한다.

약을 붙이고 나면 약을 붙인 자리가 쓰리고 안면이 약간 붓기도 하는데, 환부를 치료한다고 연고나 로션을 발라서는 안 된다. 또 입이 빨리 돌아오지 않는다고 주사 등을 맞아서도 안 된다. 그러면 아무리 약을 붙였다 해도 치유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치료 중에 닭고기와 돼지고기와 담배는 삼가야 한다. 그리고 얼굴을 뜨거운 물에 수건을 적셔 마사지는 하되, 얼굴을 씻을 때 물이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이 닿으면 약 기운이씻겨져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미나리아재비는 와사증과 관절염 치료에 효과 큰 발포 약초

참고로 김호임 할머니가 구안와사증 치료 약재로 사용한다는 자래초는 미나리아재비 또는 놋동우로 불리는 야생초이다. 트란스아코니틴산이란강한 성분을 가지고 있어 피부에 닿으면 물집이 생기는데,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예전부터 민간에서 일부러 피부를 발포시켜 체내의 독소와 어혈을 빼냄으로써 구안와사증과 관절염을 치료하는 주된 약재로 사용해왔다.

필자는 1991년 경북 달성군에 사는 제갈춘대 옹이 김호임 할머니와 비슷한 방법으로 얼굴에 발포 약초를 붙여 구안와사증을 치료하는 걸 취재하기도 했고, 1993년에는 경남 진양에 사는 고문수 옹이 미나리아재비와 구룡초를 이용하여 구안와사증을 치료하는 걸 취재하기도 했다. 또 2002년에는 충북 청주에 사는 신준식 옹이 미나리아재비를 이용하여 역시 구안와사증을 치료하는 걸 취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수소문하여 취재하러 갔을 당시 타계하여 비록 확인은 못했지만, 경남 함안에 사는 노인이 미나리아재비와 몇 가지 약초를 그 자리에서 짓찧어 관절염 환자의 무릎부위 등 관절에 붙여 물집이 잡히게 하고 진물이 나게 함으로써 관절염과 신경통을 말끔히 고쳐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상의 예로 보건대 미나리아재비는 예전부터 민간에서 주된 발포약재로, 그리고 이를 통해 구안와사증과 관절염을 치료하는 약재로 널리 사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김호임 할머니의 약재는 미나리아재비 외에 다양한 약초가 가미되는 점이 있어 주목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 기본 맥락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와사증 치료에 백발백중의 전문의로 이름 날려

그는 그의 집안에서 이러한 구안와사증 치료법이 언제부터 전해져 내려왔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시집와서 보니 시부모가 구안와사증 치료약을 만들어 인근에서 찾아오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당시엔 변변한 치료처가 없는 처지라 구안와사증이 발병하면 경상도 지역은 물론 타 지역에서까지 많은 환자가 그의 집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신통한 효과로 인해 경상도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이 익히 알 정도로 구안와사증 치료 전문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의 시부모는 그에게 "젊은 사람이 배워둬야 한다. 그리고 환자가 찾아오면 적선하는 일로 여기고 고쳐 주고, 자식들에게도 전수해 줘라"고 일렀다고 한다. 그는 시부모가 시키는 대로 약을 배워 만들었지만, 예전의 풍습상 시부모가 너무 어려워 약재 이름이 무엇인지, 또 언제부터 그러한 치료법이 집안에서 내려왔는지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그의 시부모가 했던 방식 그대로 구안와사증 환자가 찾아오면 풀을 뜯어다 찧어 붙여 주었다. 때로는 밭에서 일하는 중에 환자가 찾아오기도 했다. 환자가 찾아오면 그는 그의 시부모가 이른 대로 아픈 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하고, 자신의 조그만 능력으로나마 세상에 적선하는 일로 여기고 약을 구해 붙여주었다.

전통의술에 대한 맹목적 폄하 아쉬워

그는 지금껏 치료하면서 구안와사증이 발병한 지 치료 시한인 1년 내에 찾아온 환자는 실수 없이 고쳐주었다고 한다. 약을 붙이고 간 환자는 "여러 군데 다녔으나 고치지 못하고 고생했는데, 그곳의 약을 붙인 후 말끔히 나아 기사회생했다"며 감사 전화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복 등을 선물로 사가지고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구안와사증 환자가 찾아오는 게 드물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모든 의술이 서양의학 중심으로 되어 전통의술에 대해서는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간혹 외지를 여행하다 구안와사증 환자를 만나는 경우 "어느 지역에 가면 풀을 찧어 붙여 구안와사증을 고쳐주는 사람이 있는데, 한 번 만에 구안와사증이 깨끗이 치유되니 찾아가 보라"고 해도, "요즘 그런 게 어디 있냐. 사기꾼일 것이라"며 믿으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청도와 경주와 경산과 대구 지역의 사람들은 그의 집을 구안와사증 전문으로 알아준다고 한다. 아무튼 취재기간 중 와사증 환자가 찾아오지 않아 그의 시술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서양의술로는 와사증 치유 속수무책

구안와사증은 12경풍 중의 하나이다. 전통의서에 기록된 치료법을 보면 <사암침법>에는 간허증(肝虛症)이니 연곡(然谷)혈을 사(瀉)하고 소해(小海)혈을 보(補)하라 했다. 또 약은 <방약합편>에 백부자·백강잠·전갈을 각각 2전씩 분말하여 뜨거운 술에 타서 마시라고 했다.

한편 서양의학에서는 구안와사증을 신경섬유종증이라 명명하고 있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서는 얼굴 반쪽에 있는 귀·코·눈·입을 모두 바꾸는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막대한 수술비가 필요하므로 어린아이의 경우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처지에 김호임 할머니 집안의 치료법과 같은 간이하면서도 경제적이면서도 효과가 큰 전통 의술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 할머니와 작별하고 나오는 길에 마을 입구에서 읍내에 간다는 동네의 60대 여인이 있어 동승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딸이 10년 전에 출산 후 구안와사증이 발병했는데, 약을 붙이고 말끔히 나아 지금껏 아무런 이상이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환자가 찾아오는 건 예전엔 제법 되었는데, 근래엔 뜸하다고 한다. 다만 봄철엔 구안와사증 발병이 많은지 어느 철보다 많은 환자가 찾아온다고 한다. 치료효과는 지금까지 보아온 바 발병한 지 1년 내에 오면 분명히 낫는다고 한다.

취재 그후.

김호임 할머니를 48번째 향토명의로 발굴 취재하여 글을 쓴 때가 2003년 7월 1일부터 7월 7일입니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경주 인근에 구안와사증 치료 전문 할머니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간 많은 탐문을 해 왔습니다. 뒤늦게나마 그 맥을 잇고 있는 김호임 할머니를 발굴취재하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김호임 할머니가 사시는 지역은 경북입니다. 김호임 할머니 댁의 전화번호와 찾아가는 자세한 방법을 아시고자 하시는 분은 유료결제를 하시면 됩니다.

김석봉 | 동양자연의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