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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 전통의 맥이 만개할 날 다가옵니다

민용기(閔龍基, 61세) 선생은 강화도 향리에서 선비의 삶을 살면서 인술을 베푼 조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전통의학에 입문했다. 그의 조부는 한학(韓學)과 역사 문화에 조예가 깊었다. 또 종기와 폐결핵 등 주위의 어려운 환자가 찾아오면 도침(刀鍼) 등으로 살려내는 명의(名醫)였다. 성장해서 청년기에 그는 동국침구학회 김영진 회장과 태을침구학회 최태섭 회장, 한국온침학회 김계언 회장, 동양팔강약침학회 김정인 회장, 황춘석 대사, 관인 동양한약학원 박창하 원장에게 침구와 방제(方劑)를 도제식으로 공부했다.1995년에는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천진중의대학과 하북의과대학에서 중의학을 전공하고 중의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유유자적(悠悠自適) 주역(周易)을 공부하면서 화광동진(和光同塵)하는 민용기 선생을 만나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 전승되어 온 전통 침구문화의 맥이 만개할 날을 관조해 보았다.


Q. 침구학에 입문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세요.

A. 어느 시절에 입문(入門)했다기보다는 그냥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것 같습니다. 증조부와 조부께서는 당시 소박한 선비의 삶을 사시면서 주위의 어려운 분들에게 인술(仁術)을 베푸시는 멋진 분이셨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그 모습이 좋았습니다. 조부께서는 당시 도침(刀鍼)과 도침(陶針)의 명인(名人)이셨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들으면 의아하겠지만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헐벗고 굶주린 탓으로 종기병이 아주 많았습니다. 당시 조부께서는 거의 수술 수준의 도침(刀針)을 시술하여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셨습니다.

도침(刀針)을 달리 할아버지는 엽침(葉針)이라 부르셨는데, 때로는 먼 지방에 출타하셔서 침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셨을 때는 도자기를 깨뜨려서 그 파편으로 종기를 수술하여 많은 분들을 살려내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다섯 살 여섯 살 무렵에 할아버니께 “왜 침을 사용하지 않고 사발을 깨뜨려서 찔러요?”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에 도자기 파편보다도 더 날카롭고 깨끗한 것은 드물단다. 때론 쇠침보다 더 안전하단다.”하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조부께서는 역사 인식도 깊으셨습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고향인 강화도에서 서울을 가려면 다리가 없어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가거나, 버스를 육지까지 배로 실어날랐습니다. 60년대 초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역사 현장을 보여주신다고 손자의 손을 이끌고 서울에 도착하여 경복궁, 창경궁(당시 창경원), 덕수궁, 창덕궁(비원), 운현궁, 국립박물관 등을 관람하며 하나하나 역사적 고증과 함께 옛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말씀이 귓전에 선합니다.

조부께서는 당시 버스를 타고 가시다가 임산부가 있으면 반드시 일어나서 정중히 자리를 양보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저에게 “먼 훗날 이 할아비가 세상에 없어도 나이 많으신 분들이나 어려운 분들은 할아버지 생각하듯이 받들고 보살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엔 폐결핵 환자들도 많았습니다. 조부께서는 폐결핵 환자가 오면 일단 뱀을 잡아 오게 하시어 토막을 내어 가마니를 덮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파리가 알을 낳아 구더기가 생기는데, 닭을 하루 이틀 굶겼다가 그 구더기를 닭에게 쪼아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닭털이 모두 빠지면서 거의 알몸이 됩니다. 그 닭을 잡아서 한두 마리 푹 고아 먹이면 폐결핵 환자들이 거뜬히 치료되곤 하였습니다. 이러니 당시 이웃 동네까지 뱀을 잡으면 할아버지께 가져왔습니다.

당시엔 머리에 기계충이라고 하얀 비듬같이 아주 독한 피부병이 유행하였습니다. 당시 조부께서는 석유를 손수 발라 주셨는데, 이틀이나 삼 일 지나면 기가 막히게 치료되곤 하였습니다. 철이 나서 약성가를 공부하다 보니 『방약합편』에 석유신독아경풍(石油辛毒兒驚風) 도개선라급살충(途疥癬癩及殺蟲)이란 약성가가 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석유는 맛이 맵고, 독이 있다. 소아 경풍을 치료하고, 살충 작용을 하며, 악성 피부병에 바른다.”란 뜻입니다. 기계충에 석유를 발라 주셨던 조부를 생각하며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부께서는 소아마비도 많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달력도 거의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달력은 요즘같이 12달이 아니라, 농력(農曆)이라 하여 24절기를 붓으로 써서 배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조부께서는 직접 그 달력을 손수 써서 저에게 건네시며 10장 정도 그대로 베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네와 이웃 마을 아무개 어른 댁에 한 장씩 나누어 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옆에서 직접 먹을 갈아 달력을 쓰던 시절이 지금도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Q. 성장 과정에서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성장해서 청소년기에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세속의 학문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인격과 교양, 역사, 예절을 망각한 채 영어와 수학, 입시 위주의 교육에 매몰되어 있는 교육 현실이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환단고기(桓壇古記), 부도지(付都誌), 천부경(天付經), 삼일신고 (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 등을 각 분야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분들조차 읽어보기는커녕 그런 책이 있었냐고 반문합니다. 책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는 대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만 하더라도 없는 역사를 날조하고 있는데, 우리는 있는 역사조차 없었다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강단을 장악하고 있는 식민사관 역사학자들은 고대 찬란했던 청동기 고조선의 역사를 신석기니 구석기니 하며 야만의 역사로 매장시키는 등 무지몽매를 넘어 천벌을 자초하는 행위들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내경>과 <산해경>을 보면 폄석자동방래(砭石者東方來)라고 밝혔습니다. 돌침은 물론 고조선 시기에 선인(仙人)들은 이미 놋침을 사용하셨습니다. 청동을 유기(鍮器)라고 부르는데 유(鍮)는 쇠 금(金)과 병나을 유(兪)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우기에 대해 조부께서는 “용기야,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이롭게 하는 쇠붙이는 놋이란다. 옛날 왕들이 금이나 은이 아까워서 놋그릇을 썼겠느냐? 너도 이 다음에 침은 몰론 밥그릇과 수저는 꼭 유기를 쓰거라.”하시며 평생 유기를 쓰시며 아끼셨습니다. 이 글과 인연이 있는 독자들은 꼭 수저만이라도 놋수저를 썼으면 합니다. 그것만 써도 입안과 잇몸 염증을 방지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조부께서는 대야도 꼭 놋대야를 쓰시면서 먼 훗날 환경오염이 심하여 물도 심하게 오염됐을 때는 놋양푼에 물을 담아서 하루 재워 놓았다가 위에 있는 물을 따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모든 중금속과 공해독을 없애는 최고의 물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사랑방에 앉아 당시(唐詩)를 외우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Q. 많은 대가로부터 침구와 방제를 사사받았다고 들었습니다.

A. 청년기에는 동국침구학회 김영진 회장님과 태을침구학회 최태섭 회장님이 침구학과 학문의 진수를 전해 주신 대스승님이십니다. 두 분은 당대의 최고 유학자(儒學者)이자 침구 학문에 있어 최고의 선지식이셨습니다. 당시 한 자 한 자 써가면서 지독하게 배운 도제식 공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 한국온침학회 김계언 회장님과 동양팔강약침학회 김정인 회장님이 필자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김계언 회장님은 이번 생에 스승 없이 독각(獨覺)하신 선지자(先知者)이십니다. 전생을 보시던 안동민 선생이 공자님과 비견했을 정도로 이미 전생 삼천 년 전에 의통(医通)하신 영혼이십니다. 처음에 회장님이 온침을 놓는 장면을 보았을 때 저는 커다란 망치로 뒷통수를 한 대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 암은 물론 거의 모든 난치병은 이 방법으로 해결하면 되겠구나!’하는 울림이 다가왔습니다. 그 후 많은 비법들을 전수해 주셨습니다.

약침은 남상천 대사님의 비법을 한층 발전시킨 김정한 회장님으로부터 팔강약침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약침은 침과 약의 장점을 최대화시킨 의학의 정수(精髓)입니다. 약침을 해당 경혈에 주입하면 음식이나 약을 입으로 넘기기 힘든 환자라도 기사회생하고 말기암 환자도 고통없이 살려낼 수 있습니다.

본초와 방제 분야는 해인사에서 법정 스님과 동문수학하시고 참선하시다가 세속으로 환속하신 황춘석 대사님께 약성가와 『방약합편』을 달달 외우면서 공부했습니다. 황춘석 대사님만큼 약성가와 『방약합편』을 술술 읊으시고, 산과 들에 나가 약초를 모조리 구별하시고, 약성을 꿰뚫고 계시는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또 한 분은 관인 동양한약학원 박창하 원장님이십니다. 원장님께 본초 방제와 동양의학 전반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 부천에서 25년 동안 관인 동양한약학원을 운영하시면서 많은 후학을 배출하셨습니다. 저 역시 원장님의 요청과 황춘석 대사님의 추천으로 20여 년간 침구학 강사로 재직했습니다.

최근에는 선맥(仙脈)과 허임(許任) 대사의 침구의통(鍼灸醫通)의 맥을 고스란히 이으시며 시골 초야에 은거하시는 이종원 대사님 같은 분들과 도담(道談)과 다담(茶談)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종원 대사님은 불문의 6조이신 혜능 대사와 같은 분입니다. 마음으로나마 의산(醫山)이라는 호(號)를 바치고 싶습니다. 그나마 이러한 침구계의 대도인이 완전히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화광동진(和光同塵)이나마 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침의 진수는 말이나 글이나 대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0대 때부터 이종원 대사님 같은 대도인 밑에서 적어도 5년에서 10년 정도 도제식으로 전수받아야 합니다.


Q. 중의대를 졸업하고 중의사 자격을 취득하셨습니다.

A. 1995년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천진중의대학과 하북의과대학에서 중의학을 전공했습니다. 당시 저에게 큰 감명을 주신 교수님이 두 분 계십니다. 동진주(董進州) 교수와 유보화(劉保和) 교수이십니다. 학문과 의학에 무불통지(無不通知)가 무엇인지를 송곳으로 뚫어주듯이 저의 의문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동양의학의 궁극이라 할 수 있는 변증(辨證)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동진주 교수는 어린 시절 근무력증으로 걷지도 못했는데, 마을을 지나던 선인(仙人)에게 간단히 치료를 받꼬 걸을 수 있게 되어 의학에 입문하신 분입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시골 오지 시장바닥에서 가도의생(街道医生)이 마물산이라는 마취제로 팔다리를 마취시키고 고대 수술법으로 수술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도 녹이 나지 않게 침을 직접 만들었는데, 마지막으로 두들긴 침(針)을 시뻘겋게 달구어서 돼지비계에다 꽉 꽂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평생 녹이 나지 않고, 사람에게 좋은 기운이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Q. 앞으로의 포부를 말씀해 주세요.

A. 주역(周易)을 공부하면서 마음을 수양하고, 세상을 관조하며 지내려 합니다. 세계의 4대 종교는 물론, 수만 가지 종교와 모든 선생님들의 가르침은 어린 시절부터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순리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역경(易經)>도 직방대(直方大) 불습(不習) 무분리(无不利)라 했습니다. 즉, 자연은 익히지 않아도 다 저절로 돌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종교의 위대한 계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란 유행가 가사 속에서도 위대한 사랑과 서원, 가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유행가 가사의 한 마디를 가슴에 안고 실천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노래 가사에 제 계송을 얹어 봅니다.

’아~ 아~!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정녕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오, 그리고 사랑의 그림자 되어 끝없이 머물게 하여 주오~‘

일개화종분전산(一個火種焚全山) 하나의 작은 불씨가 온산을 태워 버리듯
소세균확란세계(小細菌擴亂世界) 하나의 작은 세균이 온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듯
일개인발위서원(一個人發偉誓願) 역으로 개개인이 위의 가사와 같은 서원으로 살아간다면
불요탐별도화원(不要探別挑花源) 천당과 극락을 굳이 찾아 헤맬 필요가 있을까


■ 김석봉 | 동양자연의학연구소 대표

1.민속의학사랑모임에 가입하시면 민속의약사랑모임 토론방을 통해 민속 의약 연구와 토론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 가입비와 월 회비는 없습니다.

2. 대한전통의학회 회원에 가입하시면 매월 3째주 토요일에 실시되는 전통의학 학술 세미나에 초대됩니다. 또한 모임을 통해 회원 간 친목 도모 및 전통의학에 대한 토론에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월 회비는 2만원입니다. 회원 가입 및 비방 · 비술 발표 세미나 참가를 원하시면 연구소로 전화(02-888-7780)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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