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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은 오행(五行)으로 위장과 함께 토장부(土臟腑)이고 육경(六經)으로도 태음습토(太陰濕土)다. 공히 오행과 육경이 동기(同氣)로 되어 있어 지구와 같이 만물을 싣고 만들어 낸다. 인신이나 오장육부가 비장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경맥은 태음(太陰)으로 표기(標氣)가 되어 하늘의 달과 같고 밤과 같다. 본기(本氣)는 습토(濕土)이고 중기(中氣)는 양명조금(陽明燥金)이다.
『황제내경』<영란비전론>을 보면 “비위(脾胃)는 창름지관(倉廩之官)이요 오미출언(五味出焉)한다.”고 했다. 창름이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다. 위장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음식물을 받아들이고, 비장은 음식물이 들어오기 전에 생각을 한다. 이미 들어온 것은 문제가 되지 않도록 나누고 운화를 시킨다. 비장은 위장의 밑에 있다고 해서 낮을 비(卑) 자를 써서 비장이라고 했다.
신장은 선천의 본(本)이고, 비장은 후천의 본이다. 사람이 땅에서 태어나고, 땅에서 살면서 땅에서 자란 음식을 먹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원천을 기본으로 삼아 오미(五味)로 기화시켜 오장육부를 만들고 운영한다. 그리하여 비장은 통혈(統血)한다고 했다.
경락 중 족태음비경은 21개 혈을 가지고 있다. 경혈의 숫자는 아무렇게 정해진 게 아니라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비경락의 21혈은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그러나 그 진정한 개수의 의미를 몰라서 오랜 세월 화두로 삼고 있었는데, 언젠가 신문의 칼럼을 보다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윌리엄페인터라는 사람(1822~1906)이 한 여름에 일을 하다가 목이 말라서 급하게 탄산음료를 마셨는데, 상한 것이었다. 며칠을 고생하고 난 후 심기일전하여 왕관 모양의 병뚜껑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허는 병 주둥이에 홈을 파고 금속 뚜껑을 씌운 다음 기계로 꽉 눌러 기하학적으로 가장 알맞은 21개의 왕관 모양의 돌기를 만들어 내용물이 상하지 않도록 했다.
힌트의 핵심은 21개의 돌기다. 만약 20개가 되면 너무 조여져서 뚜껑을 열 때 병이 깨지기 쉽고, 또한 돌기가 22개가 되면 너무 느슨해진다. 인신의 운화 작용을 하는 비장 경락도 그와 같이 21혈이어야 한다. 서양에서는 18세기에 기하학적 삼각의 꼭지점을 이용하여 가장 안정적인 21개의 돌기를 만들어 냈는데, 우리 선조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21의 숫자를 경락과 혈에 응용하여 적용하고 인신의 기를 안정시켰던 것이다.
비경이 21개 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신과 비장은 반드시 태음으로 습토이어야 한다. 그래야 폐의 대기는 물론, 땅의 생물이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을 중기(中氣)인 조금(燥金)으로 조절한다.
태음은 자월(子月)로 다기소혈(多氣少血)한다. 동지의 한 겨울이므로 폐와 함께 기가 많다. 경락의 유주 시간은 사시(巳時)로 하루의 모든 일을 하기 전에 계획을 하고 오전 일을 시작하는 경락이다.
비의 상징 동물은 양이다. 양은 비위가 좋고 소화력이 뛰어나 건초(乾草)는 물론 종이나 돈까지도 먹는다. 변은 축미태음으로 습기가 가득하여 중기인 조금(燥金)으로 나타난다. 특히 위 이빨이 없고 습기가 부족한 사막에서도 잘 생존한다. 그리고 화생토(火生土)로 혀가 발달했다.
비장은 생각을 주관한다. 따라서 생각이 많으면 비장이 약해진다. 또 비장은 사지(四肢)를 관장하므로 토가 약하면 사지가 무력해진다. 전신 오장육부가 중요하다고 하나 비의 습토인 기육(肌肉) 안에 모두 있고, 또한 그 습토로서 모든 인체를 만든다. 따라서 사람은 비위가 좋아야 전신이 건강하고, 윤택한 신체를 갖게 된다. 그러나 너무 생각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으면 기가 뭉쳐 오히려 습병(濕病)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병이 생긴다.
흔히 말하길 십중팔구는 습병(濕病)이라고 했다. 그리고 위는 대부분의 신체에 있는 산(酸)을 소비하는데, 비의 알칼리 작용으로 산도를 조절하여 체내 산성화를 방지한다. 비장은 알칼리의 총 본산으로 체내 진액의 본체이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진액의 바다가 된다. 기에서 습이 생(生)하고, 혈이 된다.
비장은 천부장(天符臟)으로 특히 토장부(土臟腑)의 태음습토경이다. 토혈(土穴)인 태백(太白) 혈(穴)은 삼토(三土)의 기능이 있어 조병(燥病)에 대효(大効)가 있다. 너무 뚱뚱하지 않은 체질의 만병에 비장을 조절하거나, 단방으로 태백 혈을 응용한다면 신경성 스트레스나 현대병의 일체를 다스릴 수 있다.
■ 김정구 | 동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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