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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은 인신의 기를 다스려 질병을 치료하고, 생리 평형을 조절하는 의술이다. 그러나 인체의 생리적인 기를 알고 체험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기를 확실히 체득하지 않고 침으로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스린다는 것은 더욱 난해한 일이다.
기는 크게 부모로부터 받은 선천적인 기와 천기(天氣)와 곡기(穀氣)를 혼합하여 만들어지는 후천적인 기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다시 장부지기(臟腑之氣)와 경락지기(經絡之氣), 종기(宗氣), 위기(衛氣), 영기(榮氣) 등으로 분류된다. 물론 원기(元氣), 진기(眞氣)도 있다.
장부의 기는 육장육부에서 작용하는 기운이다. 경락지기는 12경락과 기경팔맥으로 순환하는 기다. 종기는 선천지기의 기초 하에 후천지기인 곡기와 천기를 혼합하여 인신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기운 가운데 가장 강한 생리적인 기다. 그것이 경락을 따라 흐른다. 위기는 인신의 태극체와 경락의 밖으로 운행되는 기운이며, 영기는 장부와 경락의 내부로 흐르는 기운이다. 원기는 선천적인 기운을 말하는 것이고, 진기는 원기와 후천적인 기운을 통합한 전체적인 기운을 말한다.
동원 이정래 선생은 『동양의학 원리』에서 기가 장부에 있을 때를 기(氣)라고 하고, 경락에 있을 때를 위(衛)라고 했다. 또 혈액이 장부에 있을 때를 혈(血), 경락에 있을 때를 영(榮)이라고 했다.
이상의 기 가운데 가장 난해한 것이 경락지기다. 경락과 혈(穴)은 수천 년간 침구학의 근간으로 존재하였으나, 침구사로서 직접 체험하고 인식하기란 요원하다. 필자도 다년간 침구학을 연구하면서 경락의 실체를 체험하고자 노력했었다. 그러나 경락의 기운이란 것이 미지의 세계였다. 경락지기는 장부라는 실체가 있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기경팔맥의 경기는 도무지 어떻게 개념을 정리해야 하는지 오리무중이었다. 그리하여 경락 공부와 병행하여 기공을 수십 년간 수련하고 마침내 천지의 기운과 장부의 기, 그리고 경락의 기운들을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실로 수십 년간의 미혹된 시간들이었다.
태극체는 정(精) ㆍ 기 ㆍ 신 가운데 정이 존재론적 개념이라고 한다면, 기는 태극체의 성질인 기운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태극체가 크게는 인신이고, 작게는 육장육부와 전신의 부분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정과 기는 신(神)의 선도적 기능이 없다면 황극 작용이 틀어져 정상적인 작용을 할 수가 없다.
그러면 기 이전에 신의 개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신은 한마디로 순간순간 인식하는 찰나의 의식(意識)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안(眼) ㆍ 이(耳) ㆍ 비(鼻) ㆍ 설(舌) ㆍ 신(身)의 오감(五感)이 있어 오장의 발현이 되며, 경락의 육경은 천지와 합일되어 의식으로 작용한다. 오감 이후에 육식의 의(意)는 육장육부 중 심포와 삼초의 유심적 통합체로 경락적 배치를 했다. 즉, 경락은 의식의 통로이고, 그 통합체와 총사령관은 심포와 삼초가 된다.
신이 찰라의 의식 작용이고, 그것이 심장에서 작용하면 기쁨이 되고, 폐에서 작용하면 슬픔이 된다. 또 비장에서 용사하면 생각이 되고, 간에서 작용하면 욕심이 된다. 또한 신이 장부로 작용되면 오욕칠정이 되고, 의식이 경락으로 작용되면 경락지기가 된다.
지구가 하나의 태극체라면 내부의 핵은 군화(君火)가 되고, 자전과 공전 중에 발생되는 기운은 상화(相火)라고 할 수 있다. 인신에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인신의 본체인 체온이 군화라고 한다면 전신으로 운행되는 기운은 상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신의 작용에 의하여 육식(六識)으로 발현되고 다시 12경락으로 세분화되는 것이다.
지구의 사시(四時) 변화는 육기(六氣)로 세분화된다. 하늘의 마음이 육기로 나타난다고 한다면, 인신은 육경(六經)으로 신의 작용이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신에서 삼초(三焦)의 기운을 나누면 12경락이 되고, 수족을 합하면 육경이 된다. 이것을 다시 크게 상초 ㆍ 중초 ㆍ 하초로 삼분(三分)하고, 다시 합하면 일원(一元)이 된다.
신의 작용은 의식을 통한 의념으로 기운을 조절할 수 있다. 기공 수련을 통하면 자신의 기운과 경락의 기운을 조절하고 타인의 질병을 치료함은 물론, 자유자재로 기운을 다스릴 수 있다. 따라서 굳이 침이 아니라도 기를 통한 치료가 가능하다. 그것을 심침(心鍼)이라고 한다.
침구사는 침으로 기를 운용하기 위해 부단히 수련하고 내공을 쌓아야 한다. 그것이 침구사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요, 임상에서 환자에게 치료의 효과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 김정구 | 동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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