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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의료정책 협약

약 한 달간 지속됐던 양의사들의 파업이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과 양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9월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회동을 갖고 양의사들의 집단 휴진 중단과 의정협의체 구성을 골자로 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의 주요 내용을 보면 논란이 됐던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 의대 신설 등 정부가 추진하던 의료정책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한 뒤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협과 원점에서 재논의하며, 협의체에서 논의가 계속되는 한 의대 정원 확충 강행과 일방적인 법안 처리 등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의협이 문제를 제기하는 한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과 비대면 진료에 대해서도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또한 의협과 복지부는 지역 수가 등 지역의료지원책 개발과 필수 의료 육성 및 지원, 전공의 수련 조건 및 전임의 근로조건 개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개선,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등도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당초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공공 의료 강화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2022년부터 10년간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 의대 설립으로 매년 400명씩 10년간 4천 명의 의료 인력을 증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배출된 의료 인력을 의료 취약 지역에 배치하여 10년간 의무 근무를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공공 의료 강화의 필요성과 의료 인력 부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었다. 일단 통계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활동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인구 1천 명 당 3.2명에 훨씬 못 미치는 1.9명이다. 그것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에서는 의료 공백이 심각한 실정이다. 양의사들은 지방의 의료 공백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공공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처우가 낮기 때문이라고 강변하지만, 의사가 넘친다는 수도권만 해도 3시간 대기 5분 진료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게 관행이 되었다. 그만큼 의사 수가 부족하여 국민이 자신 받는 의료 서비스 내용과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양의사의 독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외국에서 환자 한 명에게 1~2시간을 갖고 시술될 의료 서비스의 내용과 부작용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하늘과 땅 차이다. 그만큼 우리는 의사 수 부족으로 그런 조건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 인력 확충이 항상 제기되어 왔었다. 더구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게 국가의 책무임을 생각할 때 공공 의료 강화는 시대적 과제이었다. 그럼에도 양의사 집단이 지속적인 파업으로 공공 의대 설립과 공공 의료 인력 확충을 막는 것은 시대적 과제를 거스르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로 전 국민의 대부분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심각한 실정에서 연봉 1억 원이 넘는 사람들이 국민의 생명을 ‘인질’로 삼아 그들의 이익을 위해 파업을 반복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양의사 집단이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그 속내는 자신들의 밥그릇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의료 인력이 많아지면 그만큼 자신들의 임금이 낮아진다는 계산이다. 이런 속내는 한방 첩약 급여화는 더는 논의할 여지없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잘 드러난다. 한방 첩약에 의료보험이 지원되면 국민들의 부담이 줄어들어 한방으로 의료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환자를 지키는 게 의사의 본분임을 생각할 때 이것을 저버리고 극한 투쟁을 한다는 것은 환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보다는 자신들의 밥그릇이 우선이라는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의사들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집단 파업을 반복하는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양의사들에게 국가 보건 의료에 대해 절대 권력을 쥐어 준 정부 당국에 있다. 즉, 국가의 보건 의료의 중심에 양의사들을 세워놓고, 국민들에게 양방 위주로 진료를 받도록 의료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양의사들이 각종 언론에 등장하여 정보의 비대칭 속에 그들의 이익에 맞게 일방적인 논리로 국민들에게 질병의 검사와 치료는 인공 화학요법에 의존해야 하는 것으로 세뇌시키는 작업과 건강 염려등을 부추겨 국민을 그들에게로 유인하는 일을 방관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교과서에 청진기를 낀 하얀 가운의 양의사와 양방 병원을 상징하는 초록색 십자 마크를 그림으로 보여주며 백지 상태의 어린 나이부터 병이 나면 양의사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으로 세뇌시키는 교육까지 하고 있다. 그 결과 질병의 검사와 치료는 양방에 의존하여 인공 화학요법으로 해야 하는 것이 종교의 교리처럼 되어 모든 국민들이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양의사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양의사들은 이렇게 공고하게 쌓은 독점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밥그릇이 조금이라도 침해받는 일이 있으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국민의 생명을 ‘인질’로 삼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파업을 통해서도 양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 의대 설립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백기 투항을 정부로부터 받아냈다. 또 한방 첩약 보험급여화 시범사업과 비대면 진료 육성 등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정책을 의협과 협의하겠다는 합의문을 받아냈다. 심지어 전공의특별법 등 관련 법안 개정과 제정 등을 통해 전공의 수련 조건 및 전임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필요한 행정적 ㆍ 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는 그들의 이익을 챙기는 요구까지 받아냈다. 이것은 국가의 의료정책을 양의사의 이익에 맞게 휘두를 수 있다는 걸 학습시킨 나쁜 선례다. 또 국민의 이익이 아닌 양의사들의 입맛 맞춘 이상한 의료정책 협약이요, 의료 독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태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양방 위주의 국가 의료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생명에 치명상을 줄 부작용의 위험이 높은 양방의 인공 화학요법을 국민들이 무소불위로 사용하도록 세뇌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 대신 양방의 인공 화학요법은 응급처치요법으로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고, 부상 등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린 부득이한 응급상황에서만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감시해야 한다. 또 공공 의료인을 10년간 한시적으로 배출할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배출하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판사나 검사처럼 의료 전문공무원으로 채용하여 신분과 수입을 보장해 주고, 의료 취약 지역이 없도록 순환 근무를 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점차 모든 의료인을 전문공무원으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 또한 자유시장경제에 맞게 국민의 질병 치료에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의술을 시장에 참여시켜 효율적인 의술이 가려지도록 하고,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을 물어 국민의 생명을 해치는 의술은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