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관리서비스 산업이 활성화하려면 의료 행위와 비(非)의료 행위 간 구분이 명확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험연구원 백영화 연구위원은 7월 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보험연구원 주최로 열린 보험 최고경영자(CEO) 및 경영인 조찬회에서 ‘헬스케어서비스 활용의 법적 쟁점 : 의료 ㆍ 비의료 행위 중심으로’란 주제를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현행 의료법을 보면 ‘의료인이 하는 의료 ㆍ 조산 ㆍ 간호 등 의료 기술의 시행’을 의료 행위라고 했을 뿐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있다. 자격기본법 역시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분야는 민간자격의 신설 및 등록을 제외한다고 했을 뿐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막연하게 포괄적으로 의료 행위를 규정하다 보니 의료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이 대법원 판례나 보건복지부의 유권 해석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데, 법 규정이 막연한 만큼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예컨대 자동 문신용 기계를 이용한 눈썹 문신 시술, 시력 회복을 위해 눈 주위에 안면 안마기를 사용하는 행위 등 상식적으로 볼 때 반드시 의료인이 해야 할 행위로 생각되지 않은 행위도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광범위하면서도 애매모호한 의료 행위 규정은 건강관리서비스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자격기본법 상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분야를 의료로 간주하여 민간자격의 신설 및 등록을 제외한다는 관점이라면 밥 먹고 숨 쉬고 잠자고 옷 입는 것 어느 하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인간의 삶 모든 것이 의료 행위로 간주돼 법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강관리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료인이 행해야 할 의료 행위와 비의료인이 할 수 있는 건강관리 행위를 속히 구분해야 한다.
의료법에 의료 행위가 포괄적으로 규정된 데는 의료인들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관련된 일을 독점하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특히 1945년 광복 후 그간 정부는 국민의 건강 증진과 질병 해결을 위해 서양의학의 인공 화학요법을 국민 의료의 중심에 세우고 많은 지원을 해 왔다. 또 누구든 함부로 의료 시장을 넘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의료 시장을 양의사들에게 독점시키다시피 했다.
그런데 오늘날 그 결과는 어떠한가? OECD가 발표한 2012년 <건강자료(Heal-th Data)>를 보면 OECD 가입 국가 중 암 발생률 1위, 암 사망률 1위, 40~50대 사망률 1위, 불임률 1위, 성인 2명 중 1명이 고혈압과 당뇨, 기형아 출생 100명 당 5.5명,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환자 72만5천 명으로 유병률 1위인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더 심각한 것은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의 건강이다. 1980년 기준으로 2015년을 비교하면 아토피피부염은 11배, 비만은 10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24배, 기형은 22배, 소아암은 18배나 높아졌다. 특히 기형, 자폐, 소아암, 근시, 알레르기, ADHD, 변비, 성 조숙증 등은 세계 1위의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또 정부가 2016∼2025년간 8대 사회보험의 재정을 추계한 결과 건강보험 총지출이 연평균 8.7퍼센트씩 늘어 2024년에 1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장선진화위원회가 2011년 발표한 연구 자료를 보면 이대로 가다가는 의료비 지출이 급증하여 2030년에는 건강보험료 적자가 연 50조에 이르러 국가가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처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국민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국가의 존립이 위협 받는 총체적인 난국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의료인에게 독점시킨 ‘의료 독재’의 결과다. 따라서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의료인에게 맡길 게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국가가 나서서 의료 행위와 비의료 행위로 굳이 구분하여 편을 가를 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의(大義)에 맞게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이 누구나 원한다면 건강과 생명에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고, 국민이 맘껏 다양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가는 단지 시장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불공정한 행위나 국민에게 피해를 준 행위에 대해 책임만 물으면 된다. 그게 ‘의료 독재’를 종식시키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길이요, 다양한 서비스 경쟁을 통해 국가의 의료와 건강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