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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古岩) 정병례(鄭昺例, 72) 선생은 전통 전각의 좁은 틀을 깨고 창의성과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예술 분야를 개척한 새김아트 창시자다. 그는 작품에 물질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를 포괄적으로 담아 전각 예술이라는 장르를 끊임없이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도장이란 좁은 공간을 벗어나 크기를 대형화하여 표현의 영역을 넓혔고, 굳이 찍지 않아도 그 자체가 그림이 되고, 입체적인 조각이 되고, 글자가 되는 등 작품을 다양화했다. 색깔도 빨간색만이 아니라, 청 ㆍ 적 ㆍ 황 ㆍ 백 ㆍ 흑 다섯 가지 기본색을 기준으로 다양화했다. 전각의 형태와 내용, 표현 기법과 개념을 뛰어넘는 이런 작품은 중국, 대만, 일본 등 우리나라보다 전각이 훨씬 발전한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각 예술의 새로운 장르다. 자칫 옛 유물이 될 뻔한 전각을 당당히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시킨 정병례 선생에게 새김아트의 예술 세계를 들어봤다.
Q. 새김아트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새김아트는 문자, 회화, 조각의 예술적 특성이 집약된 전각(篆刻)을 새김 기법을 가미하여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종합예술입니다. ‘새김’이라는 것은 단순히 무늬나 글자, 형상을 정교하게 물질에다만 새기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새기다.’ ‘가슴에 새기다.’ ‘정신에 새기다.’ ‘기억하고 기록하다.’ ‘사귀고 소통하다’ 등의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물 위에, 달빛에, 시공을 뛰어넘어 삼라만상의 모든 유형과 무형에 새로운 생명을 얼마든지 새겨 넣을 수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담아내고 끝없는 상상력으로 허상과 실상을 아름답게 조화시키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고, 정(靜)에서 동(動)으로 변화시키는 게 새김입니다. 그런 철학과 혼을 모아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게 새김아트입니다.
새김아트와 전각은 크게 세 요소로 이뤄집니다. 글씨를 쓰는 자법(字法), 문체를 만드는 장법(章法), 칼로 새기는 도법(刀法) 등 3요소가 어우러져 작품이 완성됩니다. 자법, 장법, 도법은 각각 지적 기능, 감성적 기능, 육체적 기능을 필요로 합니다. 이 중에서 칼로 새기는 게 제일 어려운 작업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게 제일 쉽습니다. 서예도 나중엔 고민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장법입니다. 이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합니다. 설계를 어떻게 할지 창의력과 철학과 혼을 담아내는 게 장법입니다.
Q. 새김아트를 법고창신이라고 하는데….
A.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작품에 물질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를 포괄적으로 담아 전각 예술이라는 장르를 계속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전각과 설치미술, 전각화(篆刻畵), LED 등을 결합한 독특한 기법으로 끊임없이 예술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일례로 정체되어 있는 작품을 정(靜)과 동(動)을 합일하기 위해 전각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아날로그 정신성을 집약해서 디지털이라는 그릇에 담아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아날로지털’로 대중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장이란 좁은 공간을 벗어나 크기를 대형화하여 표현의 영역을 넓혔고, 굳이 찍지 않아도 그 자체가 그림이 되고, 입체적인 조각이 되고, 글자가 되는 등 작품을 다양화했습니다. 색깔도 빨간색만이 아니라, 청 ㆍ 적 ㆍ 황 ㆍ 백 ㆍ 흑 다섯 가지 기본색을 기준으로 12가지 색을 모두 씁니다. 전각의 형태와 내용, 표현 기법과 개념을 뛰어넘는 이런 작품은 중국, 대만, 일본 등 우리나라보다 전각이 훨씬 발전한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각 예술의 새로운 장르입니다. 이런 제 작품을 보고 정통 전각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저는 이미 만들어진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전각 기능인보다는 무한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지닌 전각 예술인이길 원합니다.
전각은 서예나 그림 작품에 낙관할 때 쓰는 도장을 중국 서체인 전자(篆字)로 새겨 만든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각은 중국에서 온 말입니다. 그런데 제 작품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성과들입니다. 따라서 전각에 기본 뿌리를 두었으되 중국에도 없는 새김 예술인데, 굳이 전각이란 말을 써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순수 우리말인 ‘새김’을 가져와 새김아트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새김아트는 전통을 깬 것이 아니라, 전각을 재해석하고 확장해 한국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종합예술입니다.
Q. 한글을 작품으로 만드는 데 열정을 쏟고 계신데….
A. 한자도 우리 문자지만 작품을 세계에 내놓았을 때 ‘차이나 알파벳’이라고들 하는 게 싫었습니다. 세계무대에 내놓았을 때 저의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방법이 바로 한글입니다. 세계 어느 문자보다도 한글이 훌륭하다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열정을 가지고 한글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한글을 주제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은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직접 메시지와 간접 메시지를 함께 표현하는 작업도 가능합니다. 우주는 예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수직과 수평, 그리고 원방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글의 형태도 구조적으로 그러한 우주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개념 미술로 탄생시켰습니다.
Q. 새김아트에 대해 국내외의 관심이 크리라 봅니다.
A. 광화문 세종 이야기에서 진행한 전시 작품에 처음으로 LED 기법을 사용해 아름답게 컬러링을 했습니다. 또 한글을 재밌게 풀어서 적용시켰습니다. 이를 본 많은 관객들이 “한글이 이렇게 아름답게도 표현될 수 있구나.”하고 감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한글을 이렇게 잃을 수도 있구나.”하고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2016년 벨기에 주재 유럽연합 한국문화원이 유럽의 수도라고 하는 브뤼셀에서 주최한 특별 초대전에 한글을 주제로 한 작품을 비롯하여 전각 애니메이션까지 35점을 전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벨기에 국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어 한국의 새김아트가 유럽 내에서 충분히 인정받으며 앞으로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행사에 벨기에 각지의 저명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는데, 루벤 대학의 한국학과장 아드리안 까르보네 교수는 한글 작품에 대해 “처음 보인 디자인적 화려함 속에 천지인(天地人)을 담고 있는 한글이 내재되어 있음이 매우 놀랍다.”고 극찬했습니다. 또 전 유럽연합의회 위원이자 벨기에 외무부 장관이었던 카렐 드 규휴트는 작품마다 그 의미를 물으며 깊은 관심을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아야 할 전시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몇 만 점의 작품을 창작했는데, 서울대 법과대학에도 제 작품이 들어갔고,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전각 작가로는 최초로 한글 입체 작품이 소장되었습니다. 나주시청에도 입체 설치작품이 있으며, 제주도와 부천공원, 순천만에 대형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감사원에도 길이 20미터 길이 5미터의 대형 벽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세계 유명인사로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코피아난 전 UN사무총장, 한승수 전 국무총리, 중화권 최고 배우 탕웨이, 세계적 석학 마이크 샌델, 맥킨지 컴퍼니의 도미니크 바튼 회장 등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또 초 ㆍ 중 ㆍ 고 국정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됐고, 책표지와 방송 타이틀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구미시청 브랜드를 삼족오(三足烏)로 제작해 주었습니다.
Q. 전각에 입문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세요.
A. 어릴 적에 연이나 팽이를 만들고, 부채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숙제를 해 가면 형이나 누나가 해 준 것으로 오해받아 선생님에게 야단맞곤 했습니다. 막연하게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지만, 가난 때문에 미술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하여 스웨터나 장갑 등을 짜는 의류 공장에 취직했어요. 그러면서도 예술적 재능을 포기할 수 없었고, 미술 전시회에 구경을 가는 날이면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그때마다 나중에 꼭 예술가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던 중 27살 되던 해에 우연히 접하게 된 전각에 끌려 도장가게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 전각에 관련된 자료를 뒤져가며 10여 년 동안 독학으로 각법을 익혔습니다. 그러다 1983년에 한국전각학연구회 주최로 한국전각가협회 회장이신 정문경 선생님의 전시회를 보게 됐는데, 제겐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즉시 정문경 선생님을 찾아뵙고 정식으로 전각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 199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했고, 마침내 42살 때 첫 전각 전시회를 하면서 본격적인 전각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지금까지 개인전 40회와 단체전 130여 회를 했습니다.
■ 김석봉 | 동양자연의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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