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자연 생태 체험 명문 학교로 태어난 시골의 작은 학교
아이들의 활기찬 노랫소리에 섞여 싱그러운 햇살이 교정에 흩어진다. 매달 마지막 주말마다 필자는 충남 아산의 한 시골 학교인 거산초등학교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환경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것이 벌써 10년을 넘었다. 차가 교정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벌써 알아보고 달려와 차에서 내리는 필자의 팔과 기타에 매달린다.
이 학교는 다른 시골 학교처럼 학생 수가 급감해 한때 폐교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주민과 인근 도시의 학부모, 참교육의 꿈을 꾸던 교사들이 힘을 모아 행복한 자연의 배움터로 되살렸다. 학생이 줄어들면서 1992년 분교로 격하되었고, 2001년에는 전교생이 34명으로 줄어들자 폐교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마을의 미래를 걱정한 주민들이 폐교 반대 운동에 나섰고, 이 소식을 들은 전교조 독서연구모임의 교사 6명이 공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참교육의 꿈을 이뤄 보자며 이 학교로 전근을 자청했다. 2002년 3월에 공교육 희망 만들기를 시작한 거산분교는 학생들이 정말 재미있게 공부한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입학을 원하는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분교가 된 지 13년 만에 다시 ‘거산초등학교’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이 학교는 보통 학교와는 달리 ‘체험 중심의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봄에 냉이를 캐서 된장국 끓여 먹기, 쑥을 뜯어 쑥떡 만들기, 직접 심은 고구마를 캐서 구워 먹기, 가을에 알밤 줍기, 전통놀이 배우기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자연 체험 활동을 한다. 중요한 학교 행사는 학부모 대표와 교사 회의에서 결정되며, 연간 교육 계획에 학부모들의 의견이 반영된다. 또한 학부모가 수업 시간에 보조 교사 역할을 하거나, 학습 부진아를 지도하는 등 교육 활동의 한 축을 맡는다. 전문가 그룹도 이 학교를 돕는다. 수의사, 양봉 전문가, 식물 전문가, 환경학 교수 등으로 이루어진 자문단은 매주 돌아가며 한 시간씩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이 방학이 오는 것을 싫어할 정도로 학교 가기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자 아산과 천안시 등 도시지역의 많은 학부모가 장거리 통학도 마다하지 않고 자녀들을 전학 보내 이제 거산초등학교는 입학하기가 매우 어려운 생태 명문 학교가 됐다.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유지하려는 고집 때문에 그 이상은 학생을 받지 않는다. 물론 학생 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다른 농촌지역의 소규모 학교들을 제2의 거산초등학교로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02 화학 가공식품에 시들어 가는 아이들이 없는 무공해 학교
거산초등학교는 10여 년 전부터 전국 최초로 김치까지 완전 유기농 급식을 실시했다. 얼마 전 필자는 거산초등학교 학부모 100여 명을 초청해 우리의 전통 밥상머리 교육과 한식의 우수성에 대해 특강을 했다. 이 학교는 KBS ‘추적 60분’과 MBC ‘PD수첩’에서 학생들의 창의성을 기르는 전원 학교로 소개된 바 있고, 권위 있는 환경상인 교보생명환경문화대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정부로부터 전원 학교로 선정되어 특별 지원을 받고 있으며, 한국 교육이 가야 할 미래의 자화상으로 희망을 키워 가고 있다.
거산초등학교는 필자의 환경교육운동의 꿈이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가 열매를 맺은 곳이기도 하다. 1989년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한 발효 생균 사료 연구로 제6회 천주교 환경상을 받은 뒤 환경 교육을 위해 ‘환경 십계명’ ‘지구를 위하여’ ‘김치 된장 청국장’ 등의 환경 노래를 만들었었다. 마침 천안아산환경연합의 차수철 사무국장이 필자에게 거산초등학교의 최은희 선생님을 소개해 주면서 거산초등학교의 환경 교육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필자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환경 노래를 이용한 수업을 처음으로 이 학교에서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거산초등학교와의 인연으로 10년이 넘도록 매달 한두 번씩 학년마다 돌아가면서 지구 온난화 문제와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특강을 했고, 학기말에는 학부모들도 초청해 교정에서 환경 음악회를 열어 감동의 무대를 함께 나누었다.
거산초등학교에는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과 패스트푸드 등 화학 가공식품에 눌려 시들어 가는 아이들이 없다. 또한 거산초등학교로 인해 주변으로 귀농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침체되어 가던 농촌 마을도 되살아났다. 초창기에 참교육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전교조 선생 여섯 분은 기한이 되어 모두 다른 학교로 떠났다. 하지만 그들의 참교육 소망이 결실을 맺어 지금도 전국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이 학교의 교육 방법을 배우기 위해 다녀가고 있다.
■ 이기영 | 호서대학교 자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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